사순 5주간 화요일
지금부터 7-800년 전 13세기 경에는 올해 800주년을 맞이한 프란치스코 성인을 비롯하여 많은 영성가들이 있곤 했습니다. 그중 유명한 이가 독일의 마이스터 엑카르트가 있습니다. 신비사상을 갖고 가르침을 펴던 그는 하느님과 가까워지는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요. 그 안에는 자유로움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나는 그렇다면 어떤 자유를 원하시나요?
오늘 독서 이야기는 불평을 터뜨리는 이야기입니다. 모세를 통해 억압받는 노예의 삶을 탈출시켜 주었으나, 늘 부정적인 이들은 안 좋은 이야기를 입에 달고 다니죠. 결국 본인 스스로를 힘들게 만듭니다. 여기에 하느님은 불뱀을 보내는 강수를 두시며 구리뱀을 보게끔 하시며 ‘나를 확실히 믿어라’ 하십니다. 구리뱀은 나중에 매달린 십자가의 예수님을 연상케 하며 의미가 맞닿게 되죠. 복음에도 예수님의 말귀를 못 알아듣는 이들이 나옵니다. 둘 다 자기가 보고 싶고, 듣고 싶은 데로만 살기 때문인데요.
앞서 마이스터 엑카르트의 이야기를 꺼낸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가 평생을 두고 가르친 것은 ‘인간이 모든 사물과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그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이었습니다. 이걸 ‘버리고 떠나있기’ ‘놓아두고 있기’ 라고 합니다. 이것이 되려면 먼저 가난해져야 합니다. 물건, 돈뿐만 아니라 원하지도 않고, 더 알려 들지도 않고, 가지지도 않으려 드는 것입니다. 마치 오늘날의 미니멀리즘처럼 단촐한 삶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주님의 존재를 깨닫게 됩니다. 빈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없기에 진정한 것으로 채우고자 합니다. 여기에 이런 나에게 주님이 와 주십니다. “내가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대로만 말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여기에 무엇이 들어있나요? 내 안이 비워져 있기에 하느님께서 활동하실 공간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이 안에 당신으로 인해 충만해지고 당신의 일을 하면서 기쁨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바라던 것이 이뤄져도 기쁘지 않았던 이유는 뭘까요? 그게 참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은 아닐까요? 이런 이들은 뭔가를 얻어도 계속 불평만 하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