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간 월요일
누군가 이런 말을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꼭 교회에 가야 할 필요가 있을까? 착하게 살면 되지’ ‘꼭 하느님, 예수님을 믿어야 할까? 가난한 사람들 도와주며 살면 되잖아?’ 언뜻 들으면 그럴 듯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무엇이 빠져있을까요? 그 착하다는 것, 도와준다는 것의 방향과 일관성, 사랑의 지속도가 실은 들쭉날쭉하다는 사실을 보셨는가요?
사랑이 들쭉날쭉하다는 말이 뭘까요?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아예 사랑이 없는 사람들은 아닙니다. 가까운 가족부터 동료들을 사랑하고 있고요. 가끔은 모르는 사람을 위해 온정을 베풀고 있잖습니까? 하지만 사랑의 실천이란 것이 실제로는 그때그때마다 달라지고요. 나의 기분이나, 주머니 사정에 따라 달라집니다. 일관적이지 않고요. 방향성도 구역도 꽤나 좁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랑의 큰 줄기와 맥락을 잡아갈 때, 큰 사랑의 세부적인 작은 사랑들도 가능해지는데요. 그래서 실제 벌어진 현실은 큰 사랑보다 협소한 사랑, 초월적인 사랑이 아닌 현실적인 것에 갇혀있는 사랑이 되어 있는데요.
여기서 주님의 발을 닦아드린 마리아의 사랑을 봐야 할 것입니다. 라자로를 살려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여기엔 돌려드리는 사랑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사랑은 하기 싫어도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사랑을 할 때, 들쭉날쭉한 사랑을 잡아준다는 것을 볼 필요가 있는데요. 하고 싶은 사랑의 폐단에 무엇이 있을까요? 요사이 벌어지는 아동학대 가해자의 86%가 친부모라는 사실입니다. 이는 하고싶은 사랑의 문제와 한계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데요. 참된 사랑을 먼저 배울 때, 욕심없는 사랑이 나올 수 있습니다. 자식을 자신을 드높게 봐주는 방편으로 만들려는 지금의 세상에서 우린 제대로 된 사랑을 만나고 있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