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금요일. 주님 수난 예식

2026. 4. 3. 오후 11:53:18

글자

성 금요일. 주님 수난 예식

 우리나라의 김춘수, 윤동주 같은 시인이 영향을 받았다는 인물이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문학가 라이너 마리아 릴케입니다. 그와 편지를 나눴다는 이가 릴케의 편지만을 따로 엮은 책이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인데요. 여기서 4번째 편지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마음 속에 풀리지 않은 의문에 대해서 인내하세요. 질문 그 자체를 사랑하십시오. 답을 구하지 말아요. 그것은 본인이 살아내지 못했기 때문에 답이 주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핵심은 모든 것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지금의 질문에서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서서히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먼 훗날, 그 답을 살고 있을 것입니다.’ 효율과 성과 중심의 세상에서 매사 빠른 정답만을 알기 원하지요. 하지만 내가 구하면서 찾은 답이 아니라면, 정작 답을 만나고 맛보더라도, 무슨 뜻인지 모를 것입니다. 제대로 된 체험과 실수와 경험으로 살아내지 않은 답은, 마치 참고서의 모범답안처럼 와닿지 않을 텐데요.

 수난 예식을 참여하는 이때에 주님의 구원방식이 내 마음에 쏙 드십니까? 이 질문에 무어라 답하실 것인가요? 아마도 어려워요, 모르겠어요. 왜 하필 불편하게 그렇게까지 하신답니까?’ 라는 답이 나온다면 앞서 언급한 릴케의 말처럼 아무리 노력해도 해답을 구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아직 그 해답을 몸으로 살아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라는 말에 공감이 가실텐데요.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막상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입방아를 찧는 것처럼 경솔한 짓은 없을 겁니다. 마치 서울을 안 가본 사람이 서울을 가본 사람처럼 행세하는 것만큼 오만하고 어리석은 일은 없는 것처럼요

 주님의 수난 방식은 평범한 이들이 감히 하지 못하는 것을 하시며, 여태껏 가져왔던 우리의 모든 불만을 죽이십니다. 나는 그런 생각을 생각조차, 시도조차 행해보지 않았던 것이고요. 여전히 그럴 생각이 없는 것을 보니까요. 그러니 쉽게 포기하지 말고, 예수님처럼 살아봐야 하겠습니다.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하다보면 어느 사이엔가 그분이 하신 사랑의 신비를 헤아릴 수 있을테니까요.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