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4주간 목요일
우리가 뭔가 하기는 하는데 잘 안되는 이유는 뭘까요? 그중 하나는 구분짓고, 단절하는 행동을 하기 때문인데요. 이른바 ‘너는 너, 나는 나’ 의 태도죠. 이런 모습은 가족끼리도 벌어집니다. 어릴 땐 모두 한 부모님 아래 한 형제, 한 자매였는데요. 다들 결혼하고 각자 살림을 꾸리다보니, 갑작스레 어려운 일이 벌어지면 서로에게 미루는 현상이 빚어지고요. 우리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서로가 어떻게 연결되었는지를 망각하게 되버립니다.
오늘 독서는 바오로의 연설 장면으로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간의 약속과 성취, 그리고 예전 그들이 하느님을 거부했던 사례를 떠올려줍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부활 후, 이제 어찌해야 할 지를 묻고요. 미래를 제시합니다. 복음도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후,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사람” 이라며 “나를 보았으면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요한 14,9) 는 말씀이 자연스레 떠오릅니다. 여기서 앞에서 드린 말씀과 이어지는 부분이 나옵니다. 단절짓고, 구분짓는 행동이 한편으로 편한 시도였지만 그것이 서로의 연결성을 이해시켜주는 데에는 한계가 있음을 말이죠. 예전 이들이 예수님을 보면서 하느님을 떠올리지 못했던 것처럼, 남은 형제, 자매를 보면서 그 안에 심겨진 부모님의 모습을 떠올리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심성이 깊지 못해서일까요? 아니면 나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일까요? 혹은 그런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주님의 구원 사업은 예전부터, 지금, 그리고 미래까지 계속 나아가고 있습니다. 우린 잠시 중간 정류장에서 타서 가고 있을 뿐이죠. 여기서 만난 승객과 같이 잘 지내며 여행을 해야 합니다. 그러다 죽음이 오면 다른 회선으로 갈아타며 주님께 나아가는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이 여행이 행복하려면 우리와 함께 안배하며, 같이 해주시는 분을 더 알고 믿을 때, 내가 가는 방향이 뚜렷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함께 잘 지내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