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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식물들은 본성, 본능으로 움직이기에 자기들이 할 바에 매우 충실합니다. ‘왜 너는 토끼이고, 뱀이고, 사자이냐?’ 라고 물으면 안됩니다. 이건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이니까요. 너무 명약관화(明若觀火) 한 것이기에 바꿀 수도 거부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좀 다릅니다. ‘이성’ 이란 것이 있어서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점은 ‘자신이 믿고싶은 데로 믿으려 들 수 있다’ 는 점입니다.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좋아하는 지, 본인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상담가들이 이끌어주곤 하지요. 헌데 이런 사람도 못 만나면 자기가 원하는 것에 휘둘리며 집착을 하는데요.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좀 무섭지 않습니까? 정말 잘하는 것이 있는데, '본인만 그걸 모르다가 죽는다'. 는 것을요.
아르헨티나의 탱고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피아졸라란 작곡가가 있습니다. 헌데 그는 선술집에서 반도네온이라는 악기로 탱고를 연주하다가 문득 클래식을 공부하고 싶어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여기서 선생님을 만나 오디션을 보는데요. ‘그동안 뭐하다 왔어요?’ ‘네. 탱고라는 것을 했습니다.’ ‘쓰던 악기는요?’ ‘반도네온입니다.’ ‘여기에 그건 없으니 피아노로 해보세요’ 그가 평소 하던 음악을 연주하던 중 선생님이 말합니다. ‘클래식 하지 말고 이거 하라’ 고요. 솔직히 기분 나쁠 수 있습니다. 내가 원한 건 이게 아닌데 말이죠. 허나 프로들은 아마추어와 달리 개성이라는 자기만의 색깔이 있어야 합니다. 남들과 같아서는 살아갈 수 없지요. 피아졸라는 내심 원치는 않았지만 자기의 길을 받아들이면서 우리가 아는 유명하고 뛰어난 사람이 됩니다. 자기 길을 알게 된 것이죠.
오늘 소금의 비유가 나옵니다. 자신의 신원성을 파악하며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세상을 돕는다면 본인은 사는 맛을 알 것이고요. 남들도 그의 존재를 고맙게 여기는데요. 엘리야가 사렙다의 과부를 만나는데 “먼저 나를 위해 빵과 과자를 만들어 내오라” 는 요구가 당장 먹고 죽을 이들에게 무리한 요구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사람을 먼저 챙겨드렸기에 그들은 굶어죽지 않고 밀가루, 기름이 떨어지지 않게 되는데요. 신자의 의무를 다했기 때문이지요. 여기서 이런 것을 알게 됩니다. ‘하고 싶은 것만 하려는 사람은 결국 하고싶은 것도 못하게 된다’ 고요. 자신이 해야 할 바를 아는 이들은 당장의 손해보다는 나중 얻을 복을 예상한다면 그리 큰 문제가 아님을 아는데요. 우린 과연 나답게 살고 있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