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0주간 수요일

2026. 6. 10. 오후 5: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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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10주간 수요일

 여러분은 본인의 연약함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요? 사실 우리가 교회에 왔다는 것. 기도를 한다는 것 자체가 본인의 약함을 인정하는 것인데요. 하지만 기도를 안하는 이들은 그들이 강해서 그런 걸까요? 아니죠. 오히려 본인의 약함이 드러날까봐 꺼리고 두려워하기 때문에 감추는데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약함에서 우린 무엇을 해나가야 할까요?

 이미 우리가 성경을 공부하고 있듯이 당시 이스라엘 상황은 남과북으로 갈려 있었고요. 북이스라엘은 분위기가 어수선하고 정권이 계속 바뀌는 상황이었습니다. 여기에 매달릴 무언가가 필요하다 여기고요. 이방인과의 결혼정책을 통해 자연스레 이방인의 신이 유입되면서 그걸 믿게 됩니다. 오늘 독서가 그런 내용이지요. 바알 예언자 450명 대 주님의 예언자 엘리야 한 명뿐인 상황입니다. 여기서 그걸 믿는 이들을 탓하기 보다 먼저 해야려야 할 점은 처해있는 구조와 현상을 보면서 왜 이들이 악에 사로잡힌 것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느냐?를 살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참되고 거짓이 없고, 성실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실상은 자신을 자꾸만 감추려 들고요. 거짓으로 위장하고, 남에게 책임을 미루는 모습이 나옵니다. 왜일까요? 요사이 벌어지는 정치권의 문제가 그렇지요. 보통은 패했으면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이젠 버팁니다. 어떤 구실을 만들면서요. 이게 그들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요사이 퍼지는 사회풍조입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사회악으로 전염되듯 번집니다. ‘다들 그러니 문제가 없다고 말아 버립니다. 그리고 같이 살아야 하는 이들에게 왕따를 당하면 안되니 더더욱 제대로 된 선택을 못하는데요. 이건 하느님의 빛, 사회 심리적은 도구로 비추면 비출수록 이들은 숨어들고 피하는 것은 자신의 현 실정을 마주 대할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꾸 부정하고 피하는 연약함이 나오는데요. 그게 해결방법이 아니란 것을 알면서도 그러고 있습니다. 참으로 불쌍하고 가련하지요. 알아도 답을 택하지 못하니까요. 이럴 때 뭐가 필요할까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자신의 거품을 걷어내고 현실을 마주하면서 복음처럼 주님이 주신 가르침을 다시 차근차근 익혀야 합니다. 왜 많은 선생님들이 기초와 기본기에 대해 중요시 할까요? 사람이 그렇습니다. 그런 작은 것은 무시하면서 큰 것만 노리는 허황됨이 있기 때문인데요. 선함이 부족하면 악함과 결탁을 합니다. 우린 약하기에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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