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1주일

2026. 6. 13. 오후 3:26:52

글자

연중 11주일

 세상은 참으로 재밌는 구석이 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잘 안되고요. 정작 나는 별로라고 여긴 것을하면 다른 사람들이 좋아해준다 점입니다. 내가 생각하기엔 그럴 듯 하게 여겨져 남도 좋아해 줄 것이라 생각하지만 결국 남은 원치 않곤 합니다. 사업도 그렇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이걸 하면 대박 날 것이라 여기지만 사회는 꼭 그렇게 흐르지 않지요. 여기엔 무엇이 빠졌기 때문일까요? 가장 중요한 이타성입니다. 남을 배려하지 않으면 그렇습니다. 성당 마당의 잔디를 돌보면서 이런 걸 느낍니다. 우리 눈엔 그저 잔디, 나무, 풀이 있는 것처럼 여기지만, 실은 풀 사이에 기생하는 벌레들이 있고요. 그걸 아는 새들이 찾아와 벌레를 먹으러 옵니다. 여기에 길냥이들이 가끔 새를 사냥하려 옵니다. 이 말이 무슨 뜻입니까? 그들이 살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되니 여러 가지가 찾아오면서 그들만의 자연스런 질서가 형성됩니다.

 여기서 교회도 그런 모습이 있습니다. 하느님이 창조하시고 그 세상 위에 사람들이 살아갑니다. 여기에 교회만의 정체성을 띤 이들이 초기교회를 잘 닦아놓아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교회가 커지고, 인원도 많아지고, 여기에 본인들만 원하는 것도 할 수 있는 부가성도 갖게 됩니다. 허나 문제도 발생되어 사람들이 교회를 떠납니다. 이유가 뭘까요? 이른바 다 된 밥상에서만 밥을 먹으려 한다 는 점이지요. 남들이 바라는 것을 자신의 노력으로 해줄 바가 있는데 이걸 무시하고,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고만 들면, 기존에 있던 이들은 힘이 빠지게 되고요. 힘 빠진 얼굴을 보면서 나는 저런 거 하면 안되겠다. 하지 말아야겠다 고 여기게 됩니다. 같이 하려는 게 아니라, 남이 해놓은 것에 혜택만 얻으려고만 들면, 정작 얻고 싶은 것도 못 얻게 됩니다. 이건 예수님 시대 때도 그러했습니다. 로마의 압제 하에 누구는 독립운동을 했지만, 누구는 로마세력에 빌붙으며 그들을 밀고합니다. 하느님을 믿는 유대인들이지만 하느님 외의 것에 사로잡혀 하느님을 배반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목자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다는 구절은 현실을 반영합니다.

 사랑하는 인헌동 본당 교우 여러분

살면서 돈보다 더 필요한 것이 뭘까요? 독려하며 서로를 돕는 것입니다. 나만 생각하지 않을 때, 그 이타성이 서로를 살립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교회와 신자를 지적하기 전에 나는 주님의 참다운 자녀로 살아가는가?’ 란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부족하기에 부르셨고요. 우린 그분의 덕택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 고마움을 어떻게 갚아야 할까요? 주위 이웃들에게 전하십시오. 그러며 감사해 하십시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