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령의 날
사람에게 있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을 꼽으라면 대다수가 ‘죽음’을 꼽곤 합니다. 생(生)이 다 한다는 것. 그러면서 모든 것이 끝나고 다음이 어떻게 이어질 지 모른다는 사실은, 진시황이 불로초를 찾으러 명령했다는 예화를 들지 않더라도 인간이 그동안 쌓아왔던 모든 것이 허물어지는 것처럼 여겨지는, 그야말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영역일 것입니다. 그것을 개인적으로 피부로 느꼈던 적이 있었으니 엄청난 사람들의 반대와 시위를 목격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벌써 20여년 전, 서울의 모 성당에서 납골당을 만들려던 때였습니다. 그러자 각 언론기관에서 뉴스보도를 쏟아냅니다. 몇몇 학부모의 인터뷰도 나옵니다.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아니 이런 혐오시설을 학교 근처에 세운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라면서요. 그래서 한 번 그 동네에 가봤습니다. 실제로 몇 십 미터 되지 않는 곳에 초등학교가 있긴 했습니다. 하지만 ‘죽음이 혐오다’ 라는 사실에는 긍정할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죽음은 어린 학생들에게 교육을 가르쳐야 할 과목이지요. 그게 피한다고 피해지는 것입니까? 어디 죽지 않는 사람이 있답니까? 부모가 돼서 아이에게 죽음을 혐오로 가르치는 세상에서, 오늘 위령의 날은 우리 신앙인들에게 큰 가르침이 되어줍니다. 그렇게 대단해 보이고 온갖 신경을 쏟아부었던 것들이, 죽음 앞에서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 때 결국 인정할 수 밖에 없지요. 우리 모두는 주님을 뵈러 나설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요. 그것을 깨닫고 묵상하는 날이 바로 오늘 위령의 날인데요. 오늘을 통해 죽음은 피하고 혐오할 대상이 아니라, 반대로 껴안아야 비로소 살 수 있음을 알게 되는데요.
고린토인에게 보낸 첫째 편지 15장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형제 여러분, 이 말을 잘 들어두십시오. 살과 피는 하느님 나라를 이어받을 수 없고, 썩어없어질 것은 불멸의 것을 이어 받을 수 없습니다. 이 썩을 몸은 불멸의 옷을 입어야 하고, 이 죽을 몸은 불사의 몸을 입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썩을 몸이 불멸의 옷을 입고, 이 죽을 몸이 불사의 옷을 입게 될 때에 승리가 죽음을 삼켜 버렸다. 죽음아, 네 승리는 어디 갔느냐? 라는 성서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이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죽음은 더 이상 두려워할 것이 아님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분께서 죽음을 이기셨으니까요. 모두가 두려워하는 죽음을 이기시고, 죄악을 없애신 분을 믿고 있는데도 여전히 두려운 이유가 무엇일까요? 결국 이런 고백을 하게 됩니다. ‘널 불안하게 만든 건.. 바로 너야..’ 우린 죽음을 부정할수록 죽음을 배우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무엇을 희망하는 지 묻게 됩니다. 우린 무엇을 어떻게 믿고 있나요? 그 믿음이 여러분을 더 이상 회피하게 만들지 않고 반대로 강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