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30주일
이른바 성공했다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차이는 뭘까요? 행복하다는 이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의 차이는 뭘까요? 인재를 키우는 모든 교육과 개인의 역량을 발휘하는 곳에서 똑같은 주제를 지목합니다. 그건 ‘자기 이해’ 가 되었느냐? 아니냐?로 차이를 두고 있습니다. 자기 이해란 뭘까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 때, 나만이 갖고 있는 것을 하며 삽니다. 매우 자연스럽게 말이지요. 마치 사자가 가진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로 사냥하듯, 독수리가 4,0 이상의 시력으로 멀리서 사냥물을 알아보고 낚아채듯, 자신만의 무기로 살아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럽지요. 하지만 유독 인간만은 본인이 어떤 지를 잘 모릅니다. 그래서 철학자 버트란트 러셀은 이런 말을 합니다. ‘현대 사회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어리석은 사람은 확신에 차 있고, 지능 있다는 사람은 의심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있고 무엇을 못하는 지를 모르면서 살면 불행할 수 밖에 없는데요. 욥기 5장에 이런 말씀이 나오지요. “그분께서는 슬기롭다는 자들의 꾀로 붙잡으신다” 본인이 똑똑하다고 교만을 떨다가 그것으로 망할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여기서 ‘메타인지’ 의 필요성을 느낍니다. 메타인지란 자신이 지금 생각하는 것보다 높은 차원에서 관찰하고 발견하는 고차원의 생각의 기술입니다. 그럴 때 ‘내가 지금 잘 하고 있는가? 아니면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가?’ 가 보이는데요. 이미 그리스 철학에서 시작되었고요. 현대 심리학에도 이어지며 더욱이 성경 전반에도 자신을 알 때 하느님을 알 수 있다고 말하는데요.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게다가 복음에 나온 바리사이와 세리의 기도에서 왜 주님은 세리를 두둔하셨을까요?
복음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는 자들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주님은 들어야 하는 대상자를 이미 지정하셨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모르는 이들이지요. 정확히 말해서 자기 이해를 안 하고 사는 이들입니다. 가진 자리와 재산으로 스스로 행복하다고 여기고 있지요. 그래서 모르는 겁니다. 반대로 세리는 이렇게 기도하지요.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그는 로마 압제하에서 같은 민족에게서 세금을 거둬서 바치고, 여기에 자신에게 떨어지는 수수료로 사는 형편임을 알기에 같은 민족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품었기에 이런 기도를 바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상태를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기도가 더 솔직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고, 솔직하십니까? 1독서에도 “겸손한 이의 기도는 그분께 도달한다” 고 하였습니다. 스스로를 인정할 때 참다운 출발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