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7주간 목요일
‘뭔가를 채워주시는 하느님’ 은 우리에게 위로를 주십니다. 그런데 그 위로는 ‘내가 바라는 기도를 했다고 얻어지는 정공법’ 으로만 채워지지는 않는 듯 합니다. 느꼈던 결핍이 그를 달라지게 하는 경우도 있으니 말입니다.
가끔 아버지뻘인 나이의 남자와 결혼하는 젊은 여성의 경우를 보곤 합니다. 남들은 ‘돈 때문에’ 라고 칭하는 이도 있으나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어릴 때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요. 또래 남자에게는 얻지못한 성숙한 부성(父性)을 원하다가 그런 나이대의 남자에게서 편안함을 얻는 여성들이 있습니다. 또는 어떤 아이가 공부를 열심히 했답니다. 그런데 공부가 좋아서가 아니었습니다. 부모에게 사랑을 얻지 못해 ‘관심을 써달라’는 이유로 부모에게 항의성의 행동인 경우가 있습니다. 다행인 것은 그들의 첫 의도는 그리 순수하지 않았으나 다른 것을 통해 채워졌다는 사실입니다. 사랑과 높은 성적으로 인한 미래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문은 열린다” 는 말씀 안에는 그들의 간절함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바란 그 문이 꼭 열린다는 말은 아닙니다. 다른 문이 열릴 수도 있으니까요. 비슷한 그 무언가가 말이지요.
결핍을 가졌다는 것은 그래서 꼭 부정적으로만 여겨지진 않습니다. 그 결핍으로 본인의 사정을 보면서 자신과 비슷한 이들에게 베풀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본인이 해야 할 바를 간파하기도 하고요. 그로인해 처음엔 자신의 환경을 탓하고 미워했지만 극복하며 나아지는 경우도 보곤 합니다. 결핍은 원동력이나 동기부여로 가진다면 그 에너지는 나를 살릴 수 있으니까요.
우린 지금 무엇을 바라고 있고, 무엇을 못 채웠다고 여깁니까?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간절한 마음으로 뭔가 이뤄주시는 하느님의 은총도 살펴야 할 것입니다. 본인의 의지만으로는 되지 않는 길을 열어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