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6주일.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오늘 복음을 들으시면서 좀 이상하지 않았나요? 부자는 라자로를 괴롭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런데도 무엇이 문제였단 것일까요? 여기서 예전에 들으신 문장을 소개합니다. ‘인간은 이성을 가진 합리적인 동물이다’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한 말입니다. 하지만 이에 반발하는 이도 나타납니다. 작가 로버트 하인라인은 ‘인간은 합리적인 동물이 아니라, 합리화하는 동물이다’ 라고 말했고요. 철학자 버트란트 러셀은 ‘흔히 인간을 합리적인 동물이라고 말한다. 나는 평생토록 이걸 뒷받침할 만한 증거를 찾아 헤맸다’ 고 말하면서 결국 찾지 못했음을 말합니다. 여기엔 나름의 배경이 있는데요. 그것은 프로이트가 말한 ‘무의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런 말이 있지요. ‘우리가 하는 70%~80% 이상이 무의식에서 일어난다. 의식적으로 행하는 20%~30%마저도 우리의 생각만큼 의식적으로 자유롭지 않다.’ 부자는 라자로를 알고 있었지만 왜 그는 아무 것도 안했을까요? 1독서에 나온 이들도 “걱정없이 살고, 상아 침상 위에 자리잡고, 안락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되잖은 노래를 불러댔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여기에 이런 것이 숨어있지요. 무의식입니다. 프로이트의 이론은 어려웠지만 이것을 현실화시킨 이가 자크 라캉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인간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해진다’ 는 유명한 명제로 의식으로부터 억압된, 무의식의 영역에 눈을 돌릴 것을 요구합니다. 인간의 욕망 또는 무의식이 말을 통해 표현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로 나눕니다. 처음에 아기는 엄마의 사랑을 받으며 크기에, 엄마와 자신을 연결시킵니다. 엄마 = 본인입니다. 자신과 엄마를 구분하지 못합니다. 아직 자아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그러다 거울에 비친 자기를 보며 자아를 발견합니다. 거울은 진짜 거울일 수도 있고요. 본인을 비추는 무엇일 수 있습니다. 거울을 보며 ‘난 특별해, 난 뛰어나’ 라며 나르시즘의 착각에 빠집니다. 여기에 제3자가 개입하는데 이것이 아버지입니다. 아버지는 엄마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법과 규칙의 세계로 들어오라고 말합니다. 이게 상징계입니다. 아기가 상상계에서 상징계로 들어간다는 뜻은 언어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언어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은 법과 원칙을 받아들인다는 말이고요. 사랑, 양심, 정의.. 이런 말은 추상적이지만 이를 통해 ‘인간이 언어를 만든 것이 아니라 언어가 인간을 만든다’ 고 하면서 언어에 의해 인간은 주체성을 띠고, 사회성을 띠고 사람답게 성장합니다. 사람은 언어에 의해 생각이 지배당한다는 뜻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말레이시아의 코타키바루에서 해지는 석양을 본다고 하지요. 여기에 갑자기 국내에 있던 친구가 전화를 해옵니다. 이때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이렇게 아름다운 것은 처음 봐’ ‘너무 감동적이야’ 하시렵니까? 어떤 대답이건 언어로만 담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언어만이 표현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우린 자기의 세계를 넘는 것을 만나야 합니다. 그것이 실재계이지요. 모든 것을 표현하긴 어렵지요. 마치 천국을 표현하는 것처럼요. 비록 어렵지만 나의 세계를 넘어서 있는 것을 언어로써 구현해야 합니다. 어떤 참사를 겪으면 우린 희생자들을 애도합니다. 그러나 전쟁이건, 사고나, 자연재해건, 그런 피해를 입은 희생자들의 영상이나 사진은 틀지 않습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실재를 피하고 싶어합니다. 대신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릅니다. 이름을 부른다는 말은 참사를 상징화한다는 뜻입니다. 추모비를 세우고, 추모일을 정하면서요. 죽음의 실재를 만난다는 것은 두렵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인헌동 본당 교우 여러분
세월호 사건이 났을 무렵, ‘300명이 한꺼번에 죽어서 많아 보이지만 연간 교통사고를 생각하면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니다’ 라는 어느 발언자의 무의식에 무엇이 들어있던 것 같습니까? 남들은 말실수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말이 평소 사람을 대하는 그 사람의 태도가 아니었을까요? 잘못을 덮는 방식이었던 거죠. 그 실수야말로 자신도 모르게 억압된 자신의 내면에 있던 무의식의 회귀 본능이 나온 것이죠. 회귀 본능이란 평소 그것을 바라보던 자신 안에 것이 드러나는 건데요. 그래서 말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말해줍니다. 아마 부자도, 독서에 흥청망청거렸던 이들도 현실을 보고 싶지 않았던 평소의 것을 보여줬습니다. 자기 세계에 갇혀있던 것을 행복이라고 여겼겠지요. 허나 우린 그래서는 안됩니다. 올해 우리나라엔 많은 사건, 사고가 있었습니다. 산불피해, 홍수피해, 가뭄 등 세계적인 전쟁과 난민들이 넘쳐납니다. 이들을 없는 사람, 없었던 사고처럼 대하진 말아야겠습니다. 우린 그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아는 이들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