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십자가 현양 축일

2025. 9. 13. 오후 2: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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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십자가 현양 축일

 다들 하나쯤 갖고 있고 아는 십자가의 날입니다. 성당 가운데에 놓였고요. 집에도 십자고상이 있고요. 누구는 목에 걸고요. 누구는 손에 끼는 묵주반지와 거기에 매달린 십자가는 우리의 신앙을 알려주는 표지임을 알립니다. 헌데 이 십자가의 신비에 대해서는 다들 어려워 합니다. 맞습니다. 쉽게 이해되지 않는 영역입니다. 원래 십자가는 사형도구였고요. 그래서 치욕과 저주스러움의 도구였으며, 죄인들과 같이 매달린 예수님은 제대로 대접도 못받으셨습니다. 헌데 우리는 이것을 기리고 있는데요.

 인간은 좀 신기한 구석이 있습니다. 어떤 영역이건 처음에는 모르기 때문에 조심스러워 하면서 배우지만, 일단 배우고 익히면 여기에 만족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는 사이가 제일 무섭습니다. 안다고 여겨서 배우자, 가족, 친족, 친구 등의 사이에서 서로에게 상처를 예사롭지 않게 주고 받습니다. 여기엔 안다고 여기기에 함부로 대하는 것이 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아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나도 그렇고, 상대방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성장하기도 하고, 퇴보하기도 합니다. 취향도 변합니다. 그런데도 그때 알았던 것을 마치 진리인양 대하던데요. 십자가의 신비에 대해 묵상을 하다 문득 제가 30년 전에 쓴 묵상노트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20대 시절 저는 이렇게 쓰고 있었습니다. 십자가, 이는 오직 신앙의 힘으로만 이해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왜 자꾸 의혹이 드는 걸까?’ 그렇습니다. 젊은 시절의 저는 믿는다지만 한편 흔들리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좀 달라진 시각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신앙의 힘이란 것은, 오직 그분밖에 없다는 것을 말한다. 그동안 삶에서 받았던 나름의 상처와 체험을 통해 알게 된다. 나 또한 주님처럼 어디엔가 매달려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것이 가정이건, 학교건, 교회건, 직장이건 간에 말입니다. 희생없는 사랑은 그저 관망의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이 외치는 나만 아니면 돼 라는 외침은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무지하며, 생각없는 자세인지 알게 되었다고요. 우린 고통을 통해서 영광을 얻기 때문입니다. 그래야만 참다운 사랑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입니다. 희생없는 영광은 가짜이기 때문입니다.

 요사이 세상은 어리석음을 달리고 있습니다. 내 자녀가 귀하면, 남의 자녀도 귀한데도, 우린 내 아이들에게 이렇게 가르치지요. 학교에 있는 아이들은 다 네 경쟁자다서로를 친구도 대하겠습니까? 사랑스럽게 나누겠습니까? 모두를 적으로 돌리는 자국위주의 사고방식으로 무슨 큰일을 하겠다는 것입니까? 십자가의 신비는 부끄러움과 치욕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참된 사랑이 무엇인지 알려주십니다. 서로 사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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