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2주일
요새 마음이 아픈 이들이 많아집니다. 극단적인 사고로 자신을 몰아붙여 결국 가슴 아픈 시도로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이 생겨납니다. 이럴 때, 우린 쉽게 이런 말을 내뱉습니다. ‘죽을 용기가 있으면 그 용기로 살아야지.’ 하지만 이게 옳은 말일까요? 아닙니다. 굉장히 위험하고 무지한 인식입니다. 왜냐하면 죽음을 택할 수 밖에 없는 극단적인 상황에 놓인 이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삶을 결국 접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보지 않고서 내뱉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들의 판단력은 많이 약해져 있습니다. 현재 느끼는 고통의 크기가 말할 수 없이 크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그 순간 죽음이 사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너무나 편안한 상태로 느껴진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답니다. ‘창밖을 보는데 파란 하늘 위에 떠 있는 구름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저 구름 위라면 이 세상의 모든 근심이나 걱정을 잊고 천국처럼 아주 편안하지 않을까 하고요. 그런 생각이 든 순간 바로 창밖으로 뛰어내렸어요’. 고통이 너무 큰 나머지, 반대로 죽음이 모든 고통을 한순간에 멈춰줄 평화로 잘못 판단합니다. 그런데 이걸 이해하지 못하기에 다수의 사람이 ‘그 용기로 살지’ 라고 말해버립니다. 그 이유는 뭘까요? 그건 공감 능력이 결여되었기 때문입니다. 요새 우리 다수의 문제점은 ‘공감 능력의 결여’입니다. 특히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들이 큰 사고가 나도, 피해자들과 가족들의 아픔을 모르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가 뭘까요?
여기에 과학자들이 의견을 내놓습니다. ‘권력을 쥐면, 뇌가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고 오만함에 빠진다’고요. 마치 중독자처럼 말이죠. 캐나다 대학 공동 연구진이 실험했답니다. 참가자를 양쪽으로 나눠, 똑같은 영상을 보여주면서 한쪽은 자신이 명령권자가 됐거나 남을 압도했던 경험으로 글을 쓰게 합니다. 다른 쪽은 다른 사람에게 의존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스스로 힘없는 사람처럼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거울 뉴런(mirror neuron) 있는지 살피는 실험입니다. 거울 뉴런이란, 뇌가 활동을 하는데 상대방을 보면서, 내가 그것처럼 느끼는 공감능력이 있는지를 살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영상에 레몬을 씹는 사람을 보면, 마치 내가 신 레몬을 먹는 듯하여, 침이 괴는 듯한 뇌 활동을 살피는 겁니다. 결과가 나오는데요. 누군가를 명령하는 사람의 측면에서는 거울 뉴런이 움직이지 않았지만, 반면 약한 사람의 역할을 하던 이들은 거울 뉴런이 활성화 되었답니다. 이를통해 결론을 얻었답니다. ‘성공하면 사람이 변한다는 말은 맞다’고요. 권력의 도파민이 활성화되면 사람이 과감해지고요. 정도가 심해지면 자신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함에 빠진다고요.
오늘 1독서에 나옵니다. “거만한 자의 재난에는 약이 없으니, 악의 잡초가 그 안에 뿌리내렸기 때문이다.” 과학은 뇌 활동이라 말하지만, 종교는 이를 선악의 개념으로 풉니다. 서로 말은 달리하지만 우린 뇌를 넘어선 사람을 움직이는 인간성을 봅니다. 여기에 상대를 공감하지 못하고 거만함을 부리는 이유가 뭘까요? 이는 상대에 대한 관심 부족, 자기중심적인 태도에서 기인합니다. 이른바 과잉된 자기애, 자기애성 인격장애라고 불립니다. 이들이 지능이 낮을까요? 아니지요. 오히려 지능지수는 좋습니다. 하지만 사회성은 결여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만으로 똘똘 뭉쳐 있으니까요. 그래서 예수님도 말씀합니다. “네가 초대를 할 때 네 친구나, 형제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 그러면 그들도 다시 너를 초대하여 네가 보답을 받게 된다.” 사실 우리가 그렇게 살았지요. 내가 이번에 얼마의 축의금 받았느냐?에 따라 상대방에게도 그와 비슷하게 합니다. 챙기는 사람만 챙기고, 되받지 못하는 이들을 손절하는 방식은, 어릴 때도 잘 하지 않던 이기적 계산적인 삶의 방식입니다. 교회적인 방향에서 이런 태도를 남을 챙긴다고 말하지 않지요. 오히려 ‘관계의 돌려막기’ 라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겁니다. 그래서 주님은 갚지 못할 장애인들을 초대하라 하시며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행복할 것이다” 라고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인헌동 본당 교우 여러분
예전보다 스스로를 대단하다고 여기는 이들이 늘어납니다. 그러다 보면 자기 점검을 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됩니다. 살면서 점점 경험치가 늘고 성공도 해보니, 자기를 드높게 평가하고 싶겠지만 반면 상대를 배려를 하지 않거나, 아래로 보고, 이해하지 않는 사태도 벌어집니다. 여기에 율법학자들이 보여준 모습을 보며 늘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감각은 남에게 배운다고 익혀지는 것이 아닙니다. 늘 해볼 때, 키워집니다. 여러분도 제대로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사회와 시대와 공동체와 동떨어지지 않는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