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9주간 수요일
성경을 읽다보면 이해가 안되고요. 억울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나오곤 합니다. 오늘처럼 모세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그야말로 고생은 있는데로 다 했는데..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된다는 데.. 정작 하느님은 모세가 들어가는 것을 금하십니다. 억울하지 않습니까? 복음도 그렇습니다. ‘모두 같이 함께 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교회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그를 다른 민족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 하며 배척을 받아도 된답니다. ‘너무한 거 아닌가?’ 라고 여길 수 있습니다. 여기서 무엇을 놓치고 있을까요? 자기를 구하려면 지금의 자신을 버릴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모세가 직설적으로 잘못한 장면이 나오는데요. 민수기 20,11입니다. 당시 광야에 있던 이들은 목말라 하며 갈증에 시달려 불평을 터뜨리는 때입니다. 여기에 하느님은 “지팡이를 들어 바위에게 명령” 하면 물을 거기서 마실 수 있음을 말씀합니다. 헌데 모세는 지팡이로 바위를 두 번 이나 내리쳤기에 꾸중을 받습니다. 이게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여기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지팡이는 권위를 상징합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말씀으로 이행됩니다. 그래서 주교님이 집전하는 미사에도 복음서를 읽을 때는 주교님은 목장을 들고 있습니다. 헌데 모세는 행동을 덧붙이면서 그야말로 오버합니다. 이런 것 있잖습니까?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다보면 내가 하는 일이 마치 하느님이 하는 일 같다고 여길 때’가 있습니다. 늘 해왔으니까요. 그래서 도리에 엇나가는 행동을 스스럼 없이 하곤 합니다. 모세도 그 자리에서 있으면서 제대로 들었어야 했습니다. 복음도 그렇습니다. ‘나를 생각해주는 주위의 고견에 귀를 기울였어야’ 했습니다. 그러지 않았기에 둘이나 셋의 의견도 무시하고 결국 교회의 말도 어기면서 결국 공동체에서 축출당하는 excommunicatio, ‘파면’을 당하게 됩니다. 그들은 교회에서 어떤 것도 하지 못합니다. 좀 무섭지 않습니까?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그 지경까지 이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사실 모세는 대단한 일을 했습니다. 그의 업적은 그래서 지금까지 내려옵니다. “이스라엘에는 모세와 같은 예언자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 할 만합니다. 하느님께서 알아서 챙겨주시겠으나 남아있는 우리에게 교훈을 줍니다. ‘내게 들려오는 목소리가 하느님의 목소리인지 귀 기울이며 숙이는, 나를 접는 삶이 필요하다’ 는 점입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 자신을 잘 다스려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