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7주간 수요일
살면서 꼭 해야할 게 있습니다. 나이, 성별, 신분, 어떤 분야를 막론하고 자기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할 때가 옵니다. 일을 위해서건, 사랑을 위해서건 말이죠. 그러면서 자신이 사는 이유를 찾고, 그 가치의 참다움을 발견하게 됩니다. 헌데 이것을 모르면 어떻게 될까요? 껍데기의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그것을 키울 안목, 식견, 눈높이를 키워야 하는데요.
조선시대 실학자인 연암 박지원이 북경에 출장을 갑니다. 그곳엔 마태오 리치 신부님이 지었다는 성당에 가서 거기 그려진 ‘성모자상’ 보게 됩니다. 그림을 보고 그의 책 열하일기에 이렇게 씁니다. ‘그림에는 한 여자가 무릎에 대 여섯 살 된 어린애를 앉혀두었다. 천장에는 어린애들이 – 아기천사들을 말하는 모양 – 오색 구름속에서 뛰노는데, 허공에 주렁주렁 매달려 살결은 만지면 따뜻한 것 같고, 팔목과 종아리는 살이 포동포동 하였다.’ 당시 한국화는 색감이나 원근법이 없었는데요. 서양화는 구조, 입체감, 음영법이 있었기에 놀라워하는 문장이었습니다. 참다운 가치를 본 사람들은 반응이 있습니다. 놀라워하고, 자기 것으로 가지고 만들고픈 욕구가 생깁니다. 그 욕구가 한편 사람을 성장시킵니다. 반면, 비싼 명품을 두른다고, 가짜라도 과시를 하려만 들면 그것의 가치를 모르고서 남들이 하는 것을 따라만 하는 것이기에 갇히고 맙니다.
복음에 밭의 숨겨진 보물을 발견하고, 좋은 진주를 찾는 이들은 처음부터 자기 것이 아닙니다. 그 밭은 남의 밭이고요. 진주도 찾아보다가 본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주인도 몰라본 가치를 발견합니다. 이런 이들은 어떤 모습일까요? 독서의 모세처럼 하느님을 만난 사람처럼 빛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의 삶은 ‘피갈회옥(被褐懷玉)’ 같은 삶입니다. 비록 겉은 누더기를 입고 있어도 속은 옥구슬을 품었다는 말처럼 참다운 것을 볼 줄 아는 이들은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모세가 하느님이 주신 증거판, 십계명을 손에 쥐고 있는데 어찌 감격스럽지 않겠습니까? 그 자신도 그로인해 빛나는 삶이 됩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을 보며 기뻐하는 삶을 살고 계십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