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
작년 우리나라에도 번역된 일본 요양원에 있는 어르신이 쓰신 시를 모은 시집이 발간된 적이 있습니다. 92살의 야마다 요우 할아버지의 작품입니다. ‘연상이 내 취향인데 이제는 없어..’ 짧지만 재미있으면서 좀 슬픈, 그야말로 웃픈 내용입니다. 이것이 저며오는 이유는 우리가 나이가 들었다고 감정까지 죽은 것이 아닌 데, 나이들어 느낀 감정을 주책스럽다고 무시하는 현실을 보는데요. 하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은 무엇이었습니까? “오늘도 사랑하라” 아닙니까?
사랑에는 신기한 면이 있습니다. 없던 용기가 샘솟고요. 안하던 생각을 하며 빙그레 웃고요. 의욕이 생기고, 실천으로 감행합니다. 독서의 아가서는 마치 남의 연애편지를 읽는 듯한 낯간지럽고 어떤 것은 야시시한 것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경전에 포함된 이유는 사랑의 속성에 그런 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성으론 말이 안되는데 그 뭔가를 하는 원동력이 있기 때문인데요. 복음의 막달레나는 보시지요. ‘감히 못할 그 뭔가’를 하고 있잖습니까? 사형수의 무덤에 아침부터 찾아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동안 교리나 신학이 안 보이는 하느님을 설명하고 정리하는 데 주안점을 뒀었습니다. ‘믿음’에 대한 설명을 하려 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자칫 가슴이 차가워지는 단점도 발생합니다. 사랑은 열정이요, 에너지의 근원이고요. 이것으로 많은 일을 가능케 합니다. 그러니 나이가 들었다고, 표현하지 않았다고, 그냥 놔두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입니다. 나는 내가 가진 사랑의 감정을 어떻게 처신하고 옮기고 있습니까? 내 안에서 나오는 건전한 신호를 무시해선 안됩니다. 나는 아직 가슴이 뛰는 살아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