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6주간 목요일

2025. 7. 24. 오후 12:35:12

글자

연중 16주간 목요일

 요새는 차별, 불공평에 민감한 시대이고요. 거기에 더 돌발적으로 반응하는 세대입니다. 보통은 차별, 불공평이 생기는 이유는 그 사회의 문제점, 시스템의 한계라고 진단할 수 있지만 우리 같은 경우는 인간 각자의 내부를 들여다 보는 사람들이기에 과연 가르침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기에 민감한가?’를 봐야 하는데요.

 오늘 말씀은 상당히 불편합니다. 이사야 6장에 나오는 구절을 주님은 소개합니다. 이사야의 예언이 저 사람들에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너희는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리라.” 아니? ? 라는 물음이 저절로 나올 법한 차별적인 발언이니까요. 먼저 이런 말씀을 드려보지요. 기타를 치고 싶지만 손톱이 망가지는 것은 싫다. 하느님을 만나고 싶지만 정작 기도하느라 앉아있기는 힘들다. 계명을 지켜야 하는 것은 알지만 남에 대한 사랑과 용서는 적당히 하고싶다 이른바 수영은 배우고 싶지만 물에 젖고 싶지는 않다는 주장처럼 들리지 않습니까?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하려들면 아무 것도 얻지 못하니까요. 일단 인간은 그리 논리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기 맘대로 하고 싶어하지요. 누구의 탓일까요? 나의 상태를 인정해야 하겠지요. 가령 신부님을 무서워한다는 표현을 쓰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들은 뭘 피하고 싶을까요?를 먼저 물어야 하겠지요. 본인이 떳떳하고, 생사람 잡는 것이 아니라면 문제될 것이 없는데요. 여기서 이런 것을 보게 됩니다. ㄱ래서 어설프게 그저 듣기 좋은 소리, 칭찬은 오히려 사람을 망친다는 점입니다. 진단은 냉정하게 내려야지요. 불편은 감내해야 하고요. 반복되게 해야 제대로 뿌리를 내립니다. 저절로 되지 않지요.그래서 우린 어설프게 착하면 안됩니다. 우리의 착함은 규정과 법규 속에서 지켜야 할 것을 소중히 다루는 이들입니다. 헌데 내 맘대로 하려는 이들은 아무리 들어도, 보아도 외면합니다. 이사야 예언자 때도, 그리고 예수님 때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사람이 바른 것을 항상 좋아라 하진 않지요. 그래서 먼저 주님을 믿어야 합니다.

 정리합니다. 왜 세상엔 법규가 많이 나오고 있을까요? 그만큼 자유를 빙자한 방종한 인간들이 계속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여기 오신 분들은 뭘까요부족함을 알면서도 계속 나아가고픈 염원이 있기에 왔습니다. 주님은 이런 이들을 사랑합니다. 괜히 맛만 보고 정작 빠져들지는 않는, 믿지는 않으면서 얻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주지 않습니다. 이게 차별이고 불공평일까요?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