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6주간 월요일
예전 사막의 교부들에 관한 일화입니다. 이런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어떤 사람이 스승에게 묻습니다. “제 영혼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제 영혼은 무감각하고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스승은 말합니다. “가서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사람과 어울리고, 그 사람 근처에서 살게. 그가 하느님을 두려워하도록 자네를 가르쳐줄 것이네”’ 최상의 교육이란 뭘까요? 성숙한 사람과 만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 대다수가 자기 말 잘 들어주는 사람을 원합니다. 안타깝게도 그 방법은 사람을 키워주지 못합니다. 그야말로 ‘우쭈주’ 해주는 것을 바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나약해진 이유가 뭘까요? 자신 안에 갇힌 이유가 뭘까요? 그것은 자기 안에서 답을 찾으려 하고요. 거기서만 맴돌려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파라오는 말합니다. “우리를 섬기던 이스라엘을 내보내다니, 우리가 무슨 짓을 하였는가?” 이스라엘 사람을 내보낸 것은 그 자신이었습니다. 자식을 잃고나서 비로소 하느님을 인정했던 그들이었지요. 허나 그들의 마음은 다시 굳어집니다. 여기에 이스라엘 사람들도 쫓아오는 이집트 군사들을 보고 마음이 불안해집니다. “이집트에는 묏자리가 없어 광야에서 죽으라고 우릴 데려왔소” 여전히 하느님이 못미덥습니다. 복음에도 그렇습니다. “스숭님이 일으키시는 표징을 보고 싶습니다.” 우리 같은 물질주의 사고방식에 젖은 이들은 무엇을 봐야 할까요?
하느님을 두려워한다는 것, 이른바 경외심을 갖는다는 말은 뭘까요? 먼저 그게 안되는 이유를 보도록 합니다. 노예상태에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 스스로 갇히길 바라기 때문에 자신이 말한 것도 어기고요. 체험했던 것도 바로 부정해 버립니다.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느님이 자신을 이끌어주신 것도 망각하고, 그저 편안했던 옛것을 안주하는 방법을 택하면서, 하느님과 가까이 하기보다 멀리하는 방법을 택합니다. 그게 바로 노예생활입니다. 현실의 노예란 어떤 사람들일까요?, 잘 누려왔던 것에 대한 향수, 그리움으로 젖은 상태입니다. 그래서 다시금 돌아가려 합니다. 허나 본인만 모르지요. 내가 어디에 메여있었나?를 봐야겠습니다. 여전히 헤매는 이들이 많은 세상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