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4주간 목요일
내게 닥친 일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습니까? 1253년 경에 태어난 중국 송나라 유학자인 마단림이란 인물이 말합니다. ‘우리의 도는 괴로운 뒤에 즐겁고, 중생은 즐거운 후에 괴롭다’ 짧지만 명확하지요. 묵자도 이와 비슷한 말을 합니다. ‘힘든 일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하고자 하는 바를 얻는다.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하기 싫은 일을 면한 사람을 나는 본 적이 없다.’ 누구나 하기 싫은 일은 꺼리기 마련입니다. 여기에 내가 다 모를 영광을 나중에 만나기도 합니다.
독서에 나오는 요셉은 드디어 형제들에게 자신을 밝힙니다. “내가 형님들의 아우 요셉입니다. 우리 목숨을 살리시려고 하느님께서 나를 여러분보다 앞서 보내신 것입니다.” 솔직히 인간적으로 형들이 얼마나 원망스러웠겠습니까? 하지만 하느님의 돌보심과 그의 기지와 재능으로 근동 지방의 흉년과 굶주림을 미리 대비했고요. 결국 모두를 배불리도록 이끕니다. 그가 그저 가족들하고만 평범히 살았다면 꼼짝없이 다 굶주렸을 것입니다. 원치 않는 내침을 당하고 고독의 시간이었지만 그는 굴복하지 않았고요. 단단히 자신을 지키면서 모두를 살렸습니다. 복음의 사도들도 그랬습니다. “누구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집이나 고을을 떠날 때에 너희 발에 먼지를 털어버려라” 이른바 거절당하는 용기, 거절과 수난을 당해도 거기에 꽁한 마음이 아니라 다음 사명을 계속 이어나가는 용기가 우리에게 있습니까? 모든 조건이 좋을 수만은 없고요. 진행사항도 내 맘 같지 않겠지만 옳은 일을 하는 이들은 거기에 굴복당하지 만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 당시는 모릅니다. 나중에야 알아차리고 깨닫습니다. 그래서 화답송 말씀이 그렇지 않습니까? “주님이 이루신 기적을 기억하여라”
지금은 잘 모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화나고, 억울하고, 원망스럽고, 분노합니다. 그러나 이를 곰곰이 헤아리며 나아가는 이들은 승리하는 역사를 보곤 합니다. 그러니 좀 더 길게 생각하고, 열린 자세와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주님이 나를 어떻게 이끄시는 지 바라봐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