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2주간 목요일

2025. 6. 26. 오후 2:4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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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12주간 목요일

 세상의 이치를 오묘합니다. 남들보다 느린 것 같은데, 오히려 그것이 실력을 다지는 시간이었고요. 대기만성(大器晩成)이란 말처럼 큰 그릇이 되려면 내용물이 채워지는 시간이 필요하지요. 우리가 아는 맹자라는 책의 공손추편에 알묘조장(揠苗助長)이란 글이 있습니다. 중국 송나라에 어리석은 농부가 있었는데요. 모내기 후에 벼가 얼마나 자랐는지 궁금해서 논에 가보니 다른 사람의 벼보다 덜 자란 것 같아서, 농부는 궁리 끝에 벼의 순을 잡아 빼보니, 약간 더 자란 것 같다고 여기면서 집에 돌아와 가족들에게 하루종일 벼의 순을 빼느라 힘이 하나도 없다고 이야기하자 가족들이 기겁합니다. 이튿날 아들이 논에 가보니 벼는 이미 하얗게 말라 있었다는 내용입니다. 농부는 벼의 순을 뽑으면 더 빨리 자랄 것으로 생각해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한 것이지요. 오늘 독서 말씀이 그렇지 않습니까?

 분명 하느님은 아브람 부부에게 약속하셨습니다. 하지만 아내 사라는 못 견뎠지요. 이에 자기 몸종을 시켜 자녀를 낳게 하지만 이것이 몸종에게 업신여김을 받는 원인이 됩니다. 비겁하게 아브람도 아내 탓을 하며 여보 당신의 여종이니 당신 손에 달려 있지 않소?” 합니다. 물론 당시 문화배경상 그런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기에 따라했지만, 그것이 하느님의 약속을 가벼이 만들게 했고요. 부부사이도 소원해지는 계기가 됩니다. 복음도 그렇지요. 주님,주님을 외쳤지만 실제로 그분의 말씀답게 살아내진 못했습니다. 입술로만 신앙인이었던 것이지요. 오늘날도 비슷합니다. 반석 위에 짓지 않은 집이 떠내려가듯, 진정한 분께 기대지 않고, 자기 생각이나 당시 유행에 몸을 맡기는 이들은 앞서의 예처럼 어리석음으로 결론을 짓는데요.

 하느님은 자비로운 분이시기에 몸종의 자녀인 이스마엘에게도 미래를 약속하십니다. 이름 뒤에 은 야곱의 새 이름인 이스라엘, 사무엘처럼 하느님의 사람을 뜻합니다. 그렇다고 이스마엘이 지금의 무슬림을 꼭 지칭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의 요르단 지역을 챙겨주시는 하느님의 배려라고 봐야겠지요. 문제는 우리가 가진 편견이 그들을 다르게 보는 현실을 사니까요. 그럼 우린 주님의 약속을 어떠한 자세로 바라보고 기다립니까? 실천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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