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성혈 대축일
사람들은 참다운 것을 찾지요. 더 완전하고요. 더 고귀하며, 더 아름답고, 더 가치있는 것을 원합니다. 인간의 오감을 빌어서 설명해보지요. 시각에 민감한 이는.. 균형과 조화미에서 나오는 안정된 구조와 배치, 공간감을 통해 나오는 편안함과 더불어 빛의 찬란함과 여러 색의 미묘함을 경탄합니다. 청각에 민감한 이는.. 아름다운 소리가 어떤 음색인지, 기분좋게 들리며 그것이 주는 하모니를 느끼며 쿵쾅거리는 베이스의 박자와 근음에서 오는 소름돋는 가슴 뜀과 충격속에서 경탄합니다. 후각에 민감한 이는.. 꽃향기의 상쾌함과 달콤함 그리고 사랑하는 이의 살냄새에서 편안함을 가지며, 그 향내로 행복함을 느끼기에 경탄합니다. 미각에 민감한 이는.. 모든 것에는 맛이 있기에 더 맛깔스런 뭔가를 원하고요. 꼭 음식이 아니더라도 재료를 혀로 맛보며 경탄합니다. 촉각에 민감한 이는.. 실크처럼 부드러움, 느껴지는 피부의 매끄러움에서 기분좋음을 느끼며, 반대로 거친 것을 통해서도 와일드함과 웅장함에 경탄합니다. 그러나 오감보다 더 오묘한 맛이 있으니 봐도 알 수 없고, 맛을 봐도 느낄 수 없는 영역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의 영역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감각의 만족’을 통해 전율을 느끼지만 그분은 ‘허락하심’을 통해서만 알아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 보십시오. 영세를 받고 신자가 되었다 한들, 주님의 뜻하심을 다 이해할 수 있습니까? 성경을 읽었다고 한들, 바로 이해됩니까? 남들처럼 쭉 나와서 영성체를 했다한들, 주님을 느끼는 것은 다른 차원이지요. 오직 영혼의 소리를 통해 받아들인 이들만이 허락됩니다. 다행스럽게도 주님은 자비로우시기에 비록 잘 못 알아들어도 ‘밭에 뿌려진 씨’처럼 어떤 땅에 떨어지더라도 거기서 싹이 돋고, 열매가 맺길 바라십니다.
오늘 성체성혈대축일을 맞이하여 우린 그분을 맛보고, 음미하며, 감실 앞에 앉아 그분의 마음을 보게 됩니다. ‘감각의 만족’ 만을 원한 이들은 가끔씩 감각이 무뎌지고 죽는 것을 경험합니다. 빛과 색을 사랑하다가 눈이 멀고요. 아름다운 소리에 취하다가, 귀가 멀고요. 맛과 냄새를 향유하다가 더 강한 자극에 자연스런 맛봄을 잃고요. 아름다움을 가지려다 피부가 손상됩니다. 아름다움은 소유가 아닌, 있는 그대로를 음미함에 있습니다. 내가 가져서 바꾼다 한들, 그 본연의 것을 훼손할 확률이 더 많지요. 그분은 우리가 어찌할 지를 아시면서 당신은 허락하시며, 오늘도 내어주십니다. 그 사랑이 느껴지십니까? 내가 다 가질 수 없고, 소유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지만 그것을 허락하시는 사랑을 말이죠. 그걸 안다면 겸손된 자세가 필요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