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7주간 수요일.

2025. 6. 4. 오전 8: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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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7주간 수요일. 사도 20,28-38; 요한 17,11-19

 한 사람으로 인한 혼란을 정리하는 어제를 보내며, 개인적으로 마음 한편의 착잡함을 느낍니다. 우리나라가 남북만으로 갈라진 것이 아닌, 이젠 동서로도 갈라진 지도를 보며 주님의 마음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기도하십니다.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주십시오 과연 하나됨은 무엇일까요? “이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라고 비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악에서 지켜주십사고 빕니다.” 라며 기도하시는데요. 역사상 그리스도교는 좋은 시절만 있지 않았습니다. 많은 반대에 부딪혔고요. 그러면서 교회를 떠나간 사람들을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의 갈등은 지금도 존재합니다. 여기에 하나가 되게 해달라는 기도가 그리 단순하게 들리지만은 않는 이유는 교회는 늘 어려움에 놓여 있었기 때문인데요.

 여기서 우리의 상황을 잘 바라봐야 하겠습니다. 첫째, 우린 싸우는 사람들입니다. 무엇과 싸우나요?주님의 메시지를 따르지 않으려는 본능과 싸우고요. 나를 유혹하는 모든 것들에서 버텨내는 정신과 잘 싸워야 합니다. 둘째로, 화합을 이뤄야 합니다. 나 자신의 상태를 바라보면서 더 참된 것을 따르면서 아직 여기에 번민하고 참됨을 따르지 못하는 나 자신과 화해해야 합니다. 그럴 때 셋째로, 진리로 거룩하게 해주십시오 라는 당신의 기도가 이해가 됩니다. 진리란 어느 누구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보편 타당성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자세가 된다면 독서의 바오로가 첫머리에서 언급한 여러분 자신과 모든 양떼를 잘 보살피십시오 라는 권고가 이해될 것입니다. 그 보살핌은 어느 누구의 편이 아닌, 참으로 어려운 시간이 동반되어야 함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삼 년 동안 밤낮으로 쉬지 않고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눈물로 타이른 것을 명심하며 늘 깨어 있으십시오.”에서 바오로의 쉽지 않은 사연이 동감됩니다.

 사랑이란 그리 낭만적이지만은 않습니다. 굳을 데로 굳어져버린 이들의 마음을 녹이고 살펴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정작 굳어버린 당사자들은 본인이 그러한 지 모르고요. 그 필요성도 잘 못 느낍니다. 그러기에 그걸 살펴줄 우리 마음이 열리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지치지 않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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