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5주간 월요일
이번 주는 교육주간입니다. 참다운 교육은 어떤 것일까요? 대다수 사람들이 꽃을 돌보고, 밖에 보여지는 것들에 치중할 때 교육에 관심있는 이들은 뿌리를 돌보고요. 그것이 가능할 수 있는 여건을 돌봅니다. 이런 이들의 행동은 당장에 티가 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뭔가 진척되는 사항이 도도르지게 보이지 않기에 관심없어 하거나 또는 쉽게 폄하하곤합니다. 하지만 그 외면받음이 오히려 더 단단하게 키워내는 자양분이 되곤 하는데요. 다른 이들이 관심있어 하는 것에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배반자 유다가 아닌 다른 유다가 말합니다. “주님, 저희에게는 주님 자신을 드러내시고 세상에는 드러내지 않으시겠다니 무슨 까닭입니까?” 인간적인 서운함이 들어있습니다. 뭔가 유명해지고 사람이 많이 모여들길 바랐으니까요. 여기에 예수님은 교육방식의 철학이 있음을 봅니다. 일단 당신은 오지랖을 펴지 않았습니다. ‘요청해오는 사람’ 에게는 부탁을 들어주셨고요. ‘열려있는 만큼’ 채워주셨습니다. 그 사람이 이해할수 없는 부분은 더 진도를 나가지 않고 필요한 만큼 알려주셨습니다. 주님의 기도가 그 예지요. 짧지만 그들이 알아야 할 하느님 나라를 위한 기도가 뭔지 알려주셨습니다. 그래서 ‘들을 귀가 있는 이’들에게 그것을 더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말씀을 지키는 이에게 더 많은 것을 선사하셨습니다. ‘호기심 삼아 다가오는 이’에게는 그들 밑에 깔려진 의도를 스스로 만나게끔 하셨습니다. 부자청년이 그 예지요. 계명은 잘 지켰겠지만 가진 재산에 메여있는 삶에서 나오지 못했던 것이 그것입니다. 그러면서 믿음이 없이 다가오는 이에겐 비밀로 부치며 그걸 알려주지 않으십니다. 율법학자들이 그 예지요.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진리에 대해 알고픈 문이 열려있느냐? 그리고 현상이 바뀌는 것에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 참다운 본질의 변화를 원하느냐? 하는 질문에 답하며 나를 더 크게 만들어 가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