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3주일. 생명주일
오늘로 교황님의 추모기간이 끝나고 이번 주부터 선거를 하는 콘클라베가 열리는데요. 콘클라베 뜻이 ‘열쇠를 걸어 잠글 수 있는 방’입니다. 일부러 모두가 걸어 잠근 방에 자진하여 들어간다는 말은, 비밀 유지와 더불어서 내가 하는 투표가 오직 하느님의 뜻을 추구하고자 하는 방법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콘클라베에는 이런 격언이 있답니다. ‘교황이 되려고 콘클라베에 참석하면 추기경이 되어 나오고, 추기경이 되려고 콘클라베에 참석하면 교황이 되어 나온다’ 이른바 ‘교황을 꿈꾸지 않는 자가 교황이 된다’ 는 뜻인데요. 물론 그동안 예외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여태껏 언론에서 주목하여 보도하던 이가 교황이 된 적은 없었습니다. 그만큼 교회는 ‘하고싶은 자를 시키지 않았다’ 는 점을 봐야 하고요. 사람들이 예상한 인물을 벗어나는, ‘하느님의 의외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요. 하지만 세상은 다르지요. ‘저를 국회의원으로 뽑아주십시오. 대통령으로 뽑아주십시오’ 라며 목소리를 내고요. ‘오직 국민만 보고 가겠습니다’ 외쳤기에 그런 이들을 뽑아줬지만, 우리가 당했던 과거를 돌아보면 그 안에서 이미 자신의 욕심을 챙기고 있었고, 부당한 비리를 저질렀음을 압니다. 그래서 교회는 자기를 드러내려는 이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 안에는 ‘욕심’ 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오늘날 본당에서도 신부님들은 그런 사람을 뽑지 않으려 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욕망을 드러내면서 교회를 혼란하게 만들기 때문이지요.
오늘 복음의 예수님도 베드로에게 묻습니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3번의 연거푸 된 질문은 무엇을 뜻할까요? 그 자리에 앉으려면 다른 것이 마음 안에 자리 잡으면 안된다는 점을 알려줍니다.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가려는 마음일 때, 공적(公的)인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지금의 세상에서 필요한 것은 공적인 자세입니다. 현재 얼마나 많은 사리사욕이 펼쳐집니까? 공적인 자리에 앉은 이들도, 그 자리에 앉아 본인이 원하는 사적인 시도를 또 얼마나 많이 합니까? 공부를 많이 하면 뭐합니까? 좋은 학교를 나와 스팩이 좋으면 뭐합니까? 결국 그저 그런 사람이 되고마는 것을 보잖습니까? 한 번 뿐인 삶을 그렇게 끝맺고, 손에 돈만 쥐면 장땡입니까? 주님께 소중한 생명을 받은 사람들이 그야말로 하잘 것 없는 것에 목숨을 걸다가 소진해갑니다. 결국 본인이 무엇을 위해 사는 지도 모르면서 죽어갑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여기에 선종하신 교황님의 이야기를 말씀드리며 강론을 맺고자 합니다. 교황님에 대한 많은 뉴스가 나오면서 ‘67년간 한 번도 휴가를 가지 않으셨다’ 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요새 관점에서 여러분의 입장이라면 말도 안된다고 여길 것입니다. ‘그러면 노동법에 걸린다.. 그러면 번아웃이 온다... 휴가는 요즘처럼 휴일에 맞춰 써야지~’ 라는 생각을 하실 것입니다. 신부님들도 법적으로 1년의 15일간의 휴가가 보장되어 있긴 하지만, 당신도 그걸 알면서도 그러셨다는 점이 궁금하지 않습니까? 지금부터 67년 전은 1958년도입니다. 그분이 수도원에 입회하신 때였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그 안에 들어가면서 왜 많은 생각이 없었겠습니까? 오늘 1독서의 말씀처럼 “사도들은 그 이름으로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았다고 기뻐하며 최고의회 앞에서 물러나왔다” 예수님의 이름을 드높이다가 취급도 못받을 수 있음을 아셨을 겁니다. 2독서처럼 “살해된 어린양은 권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영예와 영광과 찬미를 받기 합당하십니다.” 라며 주님의 희생의 참 가치도 배우셨을 것입니다. 그런 것을 다 아시기에 제가 느낀 결론은 이것이었습니다. ‘아~ 교황님은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셨구나. 가슴에 품었던 것이 단순한 소명이 아니었습니다. 이분은 그동안 일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당연한 행동을 하신 것입니다. 사랑하신 것입니다. 주님을 열렬히 사랑하셨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찾아나서고, 계속 사람들과 소통하시고, 이주민의 어려움을 아시기에 그들에게 다가가실 수 있었던 것은 단순 일이라 칭할 수 없는 당연한 행동이셨습니다. 주님을 너무나 사랑하기에 그 사랑이 당신을 더 불태우게 만들었습니다. 그러기에 ‘지친다’ 는 표현은 이분에게 어울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분의 그런 생각을 읽게 되자, 솔직히 저는 부끄러웠습니다. 내가 가진 사랑의 부족함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각오를 다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희망에 다시 차오릅니다.
사랑하는 인헌동 본당 교우 여러분
우린 사적인 것을 통해서도 공적인 차원으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하느님 것, 내 것, 구분짓는 행동은 오히려 욕심을 채울 뿐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살려고 태어나신 분들이 아닙니다. 그러니 더 큰 사랑으로, 주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당신은 우리에게 큰 것을 맡겨주실 것입니다. 아울러 지금 시대에 필요한 교황님을 달라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