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부활 대축일 파스카 성야

2025. 4. 19. 오후 12:28:39

글자

주님 부활 대축일 파스카 성야

 드디어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이를 기뻐하는 인사로 사순기간 동안 하지 못한 인사말로 함께 하겠습니다. 알렐루야는 하느님을 찬미하여라라는 뜻이지요. 죽음을 이기시며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심에 감사하며 인사 나누지요. 옆 사람과 인사하셔요. 알렐루야, 알렐루야~’.. .. 우리말 어감상 혀를 굴려야 하니 렐렐~ 놀리는 것처럼 느끼실 수 있지만..ㅎㅎ. 그런 건 아니지요.

 여러분은 어디까지 보실 수 있나요? 단순히 시력을 묻는 질문이 아닙니다. 사람은 보는 데로 사는 경향이 있습니다. 내 눈에 좋아보이는 사람을 찾고요. 남들처럼 가질 때에야 만족합니다. 자랑할 만한 뭔가를 움켜쥐고 부릴 때 기뻐하고요. 그런 것이 없으면 우울하거나 힘들어합니다. 그래서 여쭙습니다. 그런 것이 주는 여러분 행복의 유통기한은 어느 정도입니까? 안타깝게도 그런 것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 물러나야 하고요. 자기 것이 아닌 데 힘을 부리면 욕을 먹습니다. 자격도 안되고 능력도 없는데, 다음 대표는 나인가? 하는 난가병이 도져서 본인 스스로 힘든 이들이 많은데요. 여기서 무엇이 보이십니까?

 오늘 말씀은 부활의 시작입니다. 하지만 주님이 일어나심을 목도하며 지켜 본 사람은 없습니다. 천사가 일러주지만 믿지 못하고, 그냥 놀라워 합니다. 내일 요한복음은 보고 믿었다 라고 나오지만, 한참 지난 시점에서 기록된 복음이 아닌 이방인들의 시각에서 기록된 루카복음은 주님의 시신을 훔쳐간 것이 아닌가?’ 하며 그야말로 멘붕상황입니다. 하지만 우린 앞서 구약의 긴 독서들을 들었습니다. 하느님은 주도면밀하시고, 참으로 계획적이시며, 이미 일러주셨습니다. 다만, 우리가 무시했고요. 외면했습니다. 갇힌 삶의 틀에서 멈춰 있는 것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현상의 세상, 물질의 세상에 너무 길들여져서 그 너머 차원이 있다는 것을 못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약속을 이루신 분입니다. 그러면서 그 너머의 삶을 당신 자신을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믿음은 강요해서 얻어지진 않습니다. 억지스러워도 안됩니다. 하지만 일부러 무시해서도 안됩니다. 그래서 여쭤 보았지요. 어디까지 보실 수 있냐?고요. 배움도 짧을 때는 안보였던 것이 더 배우면 보이는 데, 하물며 하느님의 것이 그냥 쓰윽 본다고 다 보이겠습니까? 보이는 데로만 살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