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5주간 목요일
벌써 25년도 더 전의 일입니다. 신학교를 준비하던 제게, 본당 신부님은 2가지를 주문하였습니다. 1. 우리 성당에 나오지 마라 – 모든 것을 끊고 공부하며 옆 동네 성당에 다니며 생활을 제어하고 절제하는 연습을 시키셨습니다. 2. 3-4 달에 한 번씩 면담을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제 마음과 신심상태를 보시려는 의도였습니다. 그러다가 신부님은 ‘내게 있어 하느님은 어떤 분이신가?’ 란 질문을 해오셨습니다. 때마침 당시 읽었던 성경 구절은 이러했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 이 성경구절을 읊으며 마지막에 이런 대답으로 마무리지었던 것이 생각납니다.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면 저 곽희태의 하느님이시기도 한 것 아닙니까?’ 그러자 본당 신부님은 흡족해하시며 ‘옳다’ 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우린 하느님을 너무 멀리 있는 분으로만 여기곤 합니다. 거리감을 가지고 기도합니다. 그러다보면 당연히 나랑은 덜 친한 분으로 여기고 그분을 어려워하고요. 오해하기에 이르는데요.
독서의 하느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고 “내가 그들의 하느님이 되어주겠다” 하십니다. 예수님도 “나는 그분을 알고 그분의 말씀을 지킨다” 며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왜요? 그것은 ‘나의 하느님’ 이라는 믿음의 바탕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과 내가 가까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면 그때부터 우리의 삶은 신명이 납니다. 당신이 나와 함께 계셔주시는데 뭐가 겁이 나겠습니까? 무당 등은 자기를 지켜주는 ‘몸주’ 가 있답니다. 그 접촉으로 자신이 하는 일에 거리낌이 없게 됩니다. 우린 하느님을 믿는데 뭐가 그리 겁이 나나요? 내 믿음을 들여다 봐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