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대다수 사람들은 무탈하길 바랍니다. 계획성 있게 일이 흘러가야 하고요. 갑작스런 변수가 발생하길 꺼립니다. 자본주의 세상도 그렇지요. 시장경제 체제에서 증시 상황이 의외의 것이 벌어지면 사후처리가 힘듭니다. 하지만 편안한 것이 항상 좋은 것일까요?
성경 속의 인물들은 여러 경로를 통해 부르심을 받습니다. 여기 대다수는 급작스럽게 부르심이 생깁니다.생깁니다. 갑자기 목소리를 들었다던지, 환시를 봤다던지, 어떤 징표가 새겨졌다던지, 편안하길 바라는 사람들의 생활에 갑자기 당신은 개입하십니다. 솔직히 우리 입장에서 불편하고 부담스럽니다. 전혀 그 분야에 준비가 안되어 있고요. 무지하기도 하고요. 관심없었던 방면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헌데 재밌는 것은 준비된 이들에게는 부르지도 않고,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그 자리를 노리던 이들이 시무룩해지지요. 여기서 이런 질문이 발생됩니다. 그런 사건이 벌어졌을 때, 나는 어찌할 것인가? 여전히 피할 것인가? 아니면 받아들이겠는가?입니다.
오늘 말씀들이 그러합니다. 처녀인 성모님에게 천사의 부름은 급작스러웠고요. 2독서처럼 바칠 제물은 예전 해왔던 방식이 더 이상 아니랍니다. 1독서의 아하즈 왕은 겉으로는 “주님을 귀찮게 해드리지 않겠다” 고 말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하느님의 방식을 믿지 못하고 인간적인 방법. 즉 이미 아시리아 왕에게 모든 금액을 지불하고 군사적인 요청을 해놨기에 그 방법을 쓰려는 의도가 깔려 있습니다. 이를 하느님께 알리지 않고 독단적으로 일처리를 하는 통에 끝내 국가의 위기에 봉착하게 되고요. 이사야는 하느님의 구원방식을 예고합니다.
여기에 하느님은 개입하십니다. 그리고 그런 변곡점을 통해 분위기를 바꾸시고요. 우리의 참여를 유도하시며, 예전보다 나은 방향을 제공하십니다. 가끔 풍랑이 불고 비바람이 불어야 한답니다. 그래야 바다 밑에 깔린 플랑크톤이 바다 위로 올라와 바닷속 생물이 영양분을 공급받는다는데요. 그렇다면 이런 것을 꼭 나쁘다고만 여길 수 있을까요?
기회는 위기와 함께 다가온답니다. 여기서 이런 질문이 발생됩니다. 그런 사건이 벌어졌을 때, 나는 어찌할 것인가? 여전히 피할 것인가? 아니면 받아들이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