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
그동안 옳고 그른 것에 관한 교육을 받아왔습니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치고, 배우고, 지켰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뇌는 그렇게 윤리적이지 않습니다. 본능에 더 우선 순위를 둡니다. 가령 뇌는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대가를 치릅니다. 설사 그 결정이 자기를 망쳐도 그런 결정을 내립니다.
‘은둔형 외톨이’ 들이 있습니다. 집에만 있고, 나오길 꺼립니다. 왜 그럴까요? 마음에 상처가 있으면 상처받길 원하지 않기에 집안에만 있게 됩니다. 외출을 거부하고, 사람 만나길 꺼립니다. 그게 자신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럴 때 무엇이 필요할까요? ‘해야 돼’ 라고 윽박지르는 것이 아니라 달래기 작전이 필요합니다. 천천히 설득하면서 구체적인 방법까지 제시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왜 하느님을 경배하기보다 ‘다른 신을 경배’ 하였을까요? 멸망과 죽음이 놓여진다고 경고했음에도 말이죠. 여기엔 자기에게 이미 주어진 가치와 보화가 어떤 것인지 알아보지 못했다는데 이유가 있습니다. 눈이 있어도 볼 줄 모르는 마치 ‘부러움’ 이 그 예입니다. 내 것은 보잘 것 없어 보이고 남의 것이 더 커 보이는.. 앞서 마음의 상처는 자신을 개방하면서 풀어내야 합니다, 하지만 상처받지 않겠다고 피하고, 편한 사람만을 찾으면, 다른 출구가 없게 됩니다. 예수님도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 이라 하십니다. 여기서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의 행동이 나를 살리는 것인지 죽이는 것인지 과연 제대로 알아볼 수 있는가?’ 라는 점입니다.
솔직히 나를 알아가야 하겠습니다. 나는 무엇을 잘하는가? 무엇을 못하는가? 관심 방향이 평소 어디에 맞춰져 있는가? 나? 가족? 이웃? 교회? 하느님?. 내가 유독 꺼리는 것은 무엇인가? 평소 자주 하는 말이나 행동은 무엇인가? 어렵지만 필요한 질문이고요. 가장 개인적인 질문에서부터 출발하여 사회적인 이슈에 대답해보면 점차 나아질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