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7주일

2025. 2. 22. 오후 2:3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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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7주일

 우린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시대란 지금 시각의 현재점을 말합니다. 그러면 시대의 주인공들이 무엇을 벌이고 있습니까? 지금 2025년인데요. 이미 5년 전, 202010월에 반포하신 교황님 회칙. ‘모든 형제들에서 답을 찾도록 해보겠습니다.

모든 형제들 161에서 대중적 지도력 쇠퇴의 또 다른 표징은, 단기 이득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지지를 얻고자 대중적인 요구사항에 부응합니다. 사람들을 위하여 삶을 증진하는 데에 필요한 자원을 창출하고자, 지속적이고 열성적으로 노력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여기서 누가 보이지 않습니까? 지금의 지도자들입니다. 국가의 지도자들은 지금 무엇에 관심이 있는 걸까요?

 오늘 1독서를 살펴봅니다. 당시 임금은 사울왕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다윗은 하느님께도 임금에게도 충성스러웠습니다. 맡겨진 임무를 다하였고요. 성실하게 삶을 살았습니다. 당연히 사람들은 그의 모습을 보며 칭찬하였습니다. 하지만 임금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불편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자신의 인기가 뺏긴다고 느꼈습니다. 대중의 인기가 그에게 가버리는 것에 불편했기에 부하인 다윗을 계속 죽이려는 시도를 합니다. ~ 여기서 무엇이 겹쳐 보이십니까? 자기 부하를 죽이게끔 만드는 임금에게서 말이죠.

 같은 문헌 174항에 보면 약속된 협정을 준수하려면 용기와 관용이 필요합니다. 국가들 사이의 다자간 협약에 우선권이 주어져야 합니다. 다자간 협약은 양자 간 협약보다 보편적인 공동선 증진과 더 약소국 국가들의 보호를 더 잘 보장하기 때문입니다.’ 이미 여러 국가끼리 약속을 맺었음에도 이것을 뒤엎고, 남의 나라를 자기 국가로 만들려는 시도까지 하는 현실에서, 우린 어떤 시각을 가지고 세상을 봐야 할까요? 그것도 힘이 있다는 나라들이 말이죠.

 여러분, 오늘 복음은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은 대단히 현실적으로 베풀어져야 하고요. 그리고 그것을 받는 이도 사랑을 받고 있음을 느끼게끔 해줘야 합니다. 그래서 177항에 필요한 말을 해주고 있습니다. 정치가 경제에 예속되거나, 경제 효율 중심의 기술 관료적 패러다임에 종속되지 말아야 합니다. 정치가 결여된 경제를 정당화 할 수 없습니다. 그런 경제는 현재의 위기의 다양한 측면들을 지배하는 다른 논리를 촉진시킬 수 있습니다 참다운 정치, 백성을 잘살게끔 해주는 통치는 공동체의 원활한 흐름과 분배에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정치를 혐오할 수 있겠지만, 정치 없는 세상살이는 불가능합니다. 누군가 이끌고, 들어주고, 사랑해 줄 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인헌동 본당 교우 여러분

원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임금은 필요 없었습니다. 참다운 임금은 하느님뿐이니까요. 하지만 주변 국가들이 임금을 내세운 모습이 부러워 하느님께 요청합니다. 여기에 왕을 세워주지만, 실제 그 임금은 다른 나라들처럼 자신의 안위에 더 신경을 씁니다. 다윗이 임금에게 내쳐진 신세가 되었지만 그는 선을 넘진 않았습니다. 사울이 잠든 틈을 타 그의 창과 물병을 가지고 나왔을 뿐, 죽일 수 있었음에도 그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에 세우신 사람임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복음에 보여주는 사랑도 그렇습니다. 매몰차게 대할 수 있지만 오히려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끌어안고 나눠주는 사랑을 보여주는데요.

 앞서 회칙 조항들처럼 사람들이 하는 행동들은 참으로 어리석고 부질없는 행동일 때가 많습니다. 마치 2독서의 첫 인간은 땅에서 나와 흙으로 된 사람입니다.” 처럼 흙인 우리들의 한계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둘째 인간은 하늘에서 왔습니다.” 처럼 주님의 사람 되심을 통해 그 하잘 것 없는 사람이, 얼마나 기적 같은 사랑을 할 수 있는 지도 보여줍니다. 그러니 지금 지도자들의 어리석음에 실망하지 말고, 우리가 참답게 배운 주님의 가르침을 스스로 세상에 증명해내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비록 실력이 많지 않아도, 유명하지 않아도, 우린 묵묵히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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