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6주일
옛말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물은 고요할 때에야 사물을 비춰볼 수 있다’ 흐르는 물에는 물살 때문에 비춰볼 수 없지요. 하지만 고요한 물은 마치 거울처럼 나를 비춰볼 수 있습니다. 자~ 여러분은 무엇을 원하는 분들입니까? 잠시 눈을 감고 나를 바라보지요. 내 마음에 무엇이 비치고 있나요? 욕심이 들어있나요? 원하는 게 떠오릅니까? 미운 사람이 보이나요? 갈팡질팡하면서 마음을 못 잡나요? 무기력해서 아무 것도 하기 싫습니까?.. 그게 지금의 내 모습입니다. 이제 눈을 떠보시고요. 여기서 허우적대는 나의 모습에서 무엇이 느껴지시나요?
지금의 세상은 ‘자기 것을 놓지 않고, 손해보지 않으려는 몸부림’ 에 잡혀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전 세계가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지금 자리가 영원할 것처럼 여기기 때문입니다. 다들 손해 보지 않으려 강압적인 자세를 띱니다. 여기서 이런 것을 소개해 봅니다. 미국 경제학자이면서 돈과 행복의 상관관계를 연구한 리처드 이스털린이 있는데요. ‘소득이 높아져도 불행한 이유’ 대해 설명합니다. 이를 ‘이스털린의 역설’이라고 하는데요. 잠시 돌아키면요. 예전엔 국민소득에 입각해 소비, 저축, 투자의 집계를 가지고 국민소득을 결정했었습니다. 그런 기준으로 한 나라의 국민이 국내,국외에서 일정 기간 생산하는 재화 및 서비스를 평가하는 국민총생산(GNP)이 있었고요. 그리고 한 국가 내에서 생산된 재화와 서비스의 시장 가치를 말하는 국내총생산(GDP)가 있습니다. 예전은 GNP를 말했고요. 94년까지만 썼던 말입니다. 지금은 GDP를 씁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예전은 국민이 기본적인 삶을 유지하는 지원과 복지개념, 이른바 먹고 사는 게 중요한 시대였습니다. 헌데 시대가 흐르면서 경제학자들이 볼 때 이런 개념은 단순히 화폐단위의 기초에서 나온 지표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당연히 다양한 한계점이 존재하기에, 행복수준을 파악하려면 단순한 물질적인 지표뿐 아니라 건강 증진이나 종교적 심성 등 이런 비물질적 삶의 조건이 반영되어야 한다고 여기게 됩니다. 20세기까지 소득, 국민소득은 물질적인 지표만 반영하는 것이구요. 이제 교육, 건강 등 특정 측면을 아우르는 포괄적 생활수준을 반영하려 했습니다. 1964년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였고요. 2017년 3만달러가 됐는데 우울증, 자살비율은 더 늘어갑니다. 이건 외국도 비슷합니다. 이런 점을 연구한 이스털린은 말합니다. ‘소득이 일정 수준에 달하고 기본 욕구가 충족되면 소득이 증가해도 행복은 높아지지는 않는 현상’ 을 말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사람에게 기본적인 욕구는 필요하다. 그러나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면 부자 순으로 행복한 것이 아니다’ 소득이 늘어도 사람들 행복수준에는 크게 변화가 없다는 것입니다. 경제학에서 행복은 먹고 사는 것 이상을 다루고 있습니다. 경제학에서 그게 가능하려면 소비와 여가를 통해서 이뤄진다고 이론적으로 보지만 우리 관점에서 보자면 내게 주어진 시간과 마음을 어찌 다루느냐에 따라 행복은 달라지는데요.
1독서는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와 스러질 몸을 제 힘인양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고 경고합니다. 잠시 그만큼의 역할을 해야 하는 우리건만 처음부터 다 내 것처럼 굴면, 이제 다음편은 뺏기는 것뿐입니다. 그걸 주신 분이 그냥 놔두시겠습니까? 복음에 행복선언과 불행선언은 예수님 가르침의 핵심입니다. 이것을 말씀하시려고 일부러 사람이 되셨지요. 그 요지는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부터 하느님의 나라를 살아가자’ 라는 취지입니다. 헌데 다들 자기 욕심에만 빠져있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2독서에도 “우리가 현세만을 위하여 그리스도께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모든 인간들 가운데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고 주의를 줍니다.
사랑하는 인헌동 본당 교우 여러분
그럼 무엇을 해야 할까요? 현실뿐 아니라 영원을 삶을 살려면 말이지요.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바를 하는 것입니다. 마치 구멍난 곳을 메우고, 휘어진 곳을 고쳐잡듯이 내 마음, 내 역할 속에서 해야 할 바를 해나가는 것입니다. 관리하고 보수하면서 나를 단련하는 것입니다. 앞서 경제학자조차 행복은 물질에만 있지 않다고 말합니다. 허나 대다수가 욕심을 채우느라 마지막 세상을 떠날 때 후회하는 분들을 만나곤 합니다. 그러니 제대로 눈을 크게 뜨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진정한 행복을 얻기 위해서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