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스콜라스티카 동정 기념일
대다수 사람들은 계획성 있고, 빈틈없게 일이 처리되길 바랍니다. 시간적으로 효율적이고 착착 진행되어가는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건 나의 바람이고요. 실제로 우리 자신도 그렇게 계획성 있고 일관적이며 빈틈이 없을까요? 현실은 아니지요. 실은 구멍투성이요. 실수투성이며, 허당이고 이율배반적이고 표리부동일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럼 여기서 무엇을 살필 수 있을까요?
독서는 하느님의 창조 이야기입니다. 언뜻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상황을 구분하고 정리하고, 창조하시는 것처럼 들리지만 여기엔 기계적인 조화미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젠 과학적으로 밝혀졌지요. 지구는 똑바로 자전하는 게 아니라 약간 기울어져 돌고요. 공전주기도 때에 따라 며칠씩 차이가 나고요. 입춘이 되고 3월이 되어도 여전히 눈이 오고 추운 것을 느끼며 기계적인 균형미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복음에도 사람을 고치는 예수님이 나오시지만 여전히 지금도 어려운 이들을 발견합니다. 기념일을 맞이한 스콜라스티카 성녀도 오빠인 베네딕토와 만남을 가진 후, 늦은 저녁 수도원 규칙을 준수하고자 돌아가려 했으나 그녀는 오빠와 더 이야기 하고 싶어 비가 오게 해달라는 앙탈같은 기도 때문에 정말 비가와서 베네딕토가 바로 가지 못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이는 규칙보다 상대에 대한 배려와 애덕도 중요함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런 것을 배웁니다. ‘신앙의 삶은 기계같은 엄정한 삶은 아니다’ 는 것입니다. 물론 단순한 삶을 위해 복잡함을 끊으려 규칙과 계획과 절도를 지키지만 그 안에는 갑작스레 벌어지는 것에 대처해주는 사랑이 깃들어 있음을 보곤 합니다.
나름 우리가 구멍을 메꾸고, 열심히 애쓰며 살아보지만 여전히 현실은 계획을 이루며 목표를 달성하며 얻는 기쁨보다 갑작스레 주어지는 것을 해결하며 기쁨을 얻곤 합니다. 갑작스레 다가오는 부탁, 요청을 들어주며 그들이 흘리는 눈물을 닦아주며 참다운 창조와 개선이 어떤 것인지 발견하는 것 말입니다. 그러니 내가 원하는 것에 매몰되기보다 우리의 손길을 원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귀여겨 들어야 하겠습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이유일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