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 히브 10,32-39; 마르 4,26-34
믿는다는 말은 대단히 불확실하게 들리는 말입니다. 일단 믿을 수 있는 근거가 불명확하고요. 당장 신뢰가 되지 않을 만큼 미숙함이 보입니다. 예를 들어 아이를 키울 때도 그렇지요. ‘나는 너를 믿는단다’ 듣기엔 좋은 소리같지만, 아직 미숙한 아이기에 어찌될 지 모릅니다. 다만 긍정적이길 바라지요. 게다가 믿는 부모의 믿음이 수치로 파악도 안됩니다. 그럼에도 그 말은 약이 되어, 아이가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곤 합니다. 그래서 독서에 나온 데로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라면서 비록 아직은 성장이 더디고 불명확하게 보이지만 그 믿음이 서로를 살립니다. 복음에도 하느님 나라 비유를 들면서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놓으면...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 되는 지 모른다” 고 나옵니다. 농부는 그저 뿌렸을 뿐입니다. 여기서 생각나는 문장이 나옵니다. ‘농부는 땅을 믿는다’ 고요. 매일 흙을 밟고, 거름을 주고, 눈으로 보고, 냄새를 맡고, 심지어 흙을 맛보면서 그들은 땅에서 혹은 땅 밑에서 벌어지는 것을 예상합니다. 그러면서 하늘의 날씨를 보며 미리 벌어질 것을 예측해봅니다. 물론 예상대로 안되기도 하지만요.
요한 보스코 성인은 청소년들의 수호성인으로 살레시오회를 세우며 그들을 돌봤습니다. 오늘날도 그 사업은 이어집니다. 특수한 상황에 놓인 친구들을 포기하지 않고, 여러 기술을 가르치면서 독립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수사님들이 지도하며 돌보지만 솔직히 그들의 미래는 불확실합니다. 당사자인 그들도 자신을 못 믿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중도에 포기하지 않습니다. 계속 할 수 있도록 격려하며, 자신을 놓지 않도록 믿음을 부어 넣습니다. 어쩌면 믿음은 대단히 무모해보입니다. 당장 미래가 보장되지도 않고요. 시간과 정성을 들인다고 해서 꼭 달라지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열매를 맺는 시간과 때는 사람마다 다르게 펼쳐집니다. 당장이 아닐 수도 있고요. 몇 년이 지나거나, 또는 계기를 통해 비로소 달라지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고, 항상 계속 해 나갈 때 달라진다는 것이죠. 산속의 똑똑 떨어지는 낙수물이 바위를 뚫습니다. 얼핏 불가능해보이지만 실은 그렇게 됩니다. 믿음도 생활도 계속 꾸준하다면 우린 기적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