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주간 월요일

2025. 1. 13. 오전 7:0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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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1주간 월요일

 오늘 복음 말씀은 예수님이 제자를 부르시고요. 어부의 생업을 가졌던 이들이 직업과 가정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나선 장면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근데 이게 그리 낭만적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이제 무엇을 먹으며 입에 풀칠할 것이며, 버려진 부인과 가정은 어쩌란 말입니까? 게다가 정작 길을 나선 당사자들은 무엇이 고팠고 굶주렸기에 그 모든 것을 버리고 나설 수 있었을까요? 오늘은 예수님의 관점이 아니라 제자들의 입장이 보고 싶어졌습니다.

 우리가 들어 본 가요 중에 가수 조용필의 8킬리만자로의 표범이란 6분 가까운 노래가 있습니다. 근데 앞부분이 계속 나레이션으로 읊조립니다.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죽은 눈 덮힌 킬리만자로의 표범이고 싶다 헌데 이 가사는 헤밍웨이의 단편소설 킬리만자로의 눈에서 비롯됩니다. ‘킬리만자로의 설산 서쪽 산정 부근에 바싹 마른 표범의 사체 하나가 얼어붙어 있다. 녀석이 대체 무엇을 찾아 그 높은 곳까지 온 것인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에서 작사가 양인자씨가 따왔다고 합니다. 양인자씨는 400곡이 넘는 뛰어난 작사가라 알려져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소설가 지망생이었는데 꿈이었던 신춘문예에 등단하지 못했고요. 좌절하는 동안 겪은 느낌을 일기장에 써놓은 것이 가사의 모티브가 되었답니다. ‘킬리만자로의 눈의 내용도 가난하지만 이상적인 인물이 결국 세상에 굴복하여 돈 많은 여자와 사랑없이 결혼하여 부유하지만 알맹이 없이 살다가 후회하는 이야기입니다. 현실에서 주저주저하다가 자신을 불태우지 못한 후회이지요. 여기서 무엇이 공감되시는지요?

 아마도 길을 나선 시몬, 안드레아, 야고보, 요한은 말 못할 고민이 있었을 것입니다. 가슴엔 품은 게 있는데 어찌할 바는 모르겠고요. 당장 살아야 하니까 생업에는 종사하지만 기쁨은 없는 때에 주님을 만나, 마치 막힌 혈이 뚫렸다고 여긴 모양입니다. 짐승의 시체를 찾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굶어죽을지언정, 후회할지언정, 높은 산에 오른 표범처럼 말이지요. 우리 안에 응어리진 굶주림과 허기를 봐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도의 삶을 사는 이유도 그럴 것입니다. 진정한 것을 찾고자 하는 몸부림이니까요. 이것을 어리석다고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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