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스테파노 순교자 축일

2024. 12. 26. 오후 3: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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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스테파노 순교자 축일

 개인적으로 제 주보성인이지만 만약 만난다면 묻고 싶은 질문이 있습니다. 대체 무엇을 봤기에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목소리를 낼 수 있었을까?’ 하는 질문입니다.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라는 말씀에 좋아라 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과연 미움을 견뎌낼 수 있을까요? 대다수의 경우 인정을 얻으려는 인정 욕구가 있습니다. 그래서 상담가들은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나를 좋아해주고 인정해 주는 사람을 찾아가라는 결론을 내곤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방책은 상대방에게 의존해 버리는 내가 될 수 있습니다. 나의 결핍과 외로움을 달래줄 누군가를 항상 찾고, 기대야 하기에, 그 누군가를 계속 찾으려 다니는 어려움이 생깁니다. 사람이 늘 한결같이 않기 때문입니다. 나도 변하고 상대방도 변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내가 힘들어하고 상처받는 것은 그 경험에 의한 트라우마가 아니라 그 경험에 의미를 부여했기에 힘든 건데요. 그럼 누가 의미를 부여했나요? 바로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상처는 상처대로 흐르는 물에 씻듯 흘려버려야 하는데 의미를 부여하는 바람에 계속 되새기고 있는 나를 보는데요. 이제 불완전한 나 자신과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이 아닌, 진정한 것을 찾을 필요를 느낍니다.

 아마도 스테파노 성인은 그걸 본 것 같습니다. 세상이 주는 찬사와 미움보다 더 큰 것을 말이지요. 그런 박수와 외면보다 더 크고 가치있는 것을 말입니다. 교회적 관점에서 볼 때 모든 인간은 나름의 목적을 갖고 삽니다. 마치 지구는 자전하면서 태양 주위를 돌아야 하고요. 생명은 싹을 틔우는 것이 숙명인 것처럼 말이죠. 스테파노에겐 주님을 증언해야 할 목적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당시 비신앙인의 관점에서 사형수의 결말로 끝난 예수님이란 분을 역사에서 지워버리고 싶을텐데 그 이름을 다시 꺼낸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거부감이 들었던 때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거부감을 이겨내는 미움받을 용기를 통해 그는 주님이 계심을 증언합니다. 이 시대도 그렇습니다. 하느님은 없다고 여기면서 대신 점을 보는 귀신은 찾으러 다니는 시대에서 진정 어떤 분을 찾아야 하겠습니까? 참다운 분의 원천을 주신 분을 찾을 때 바로 설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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