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3주간 수요일
세상의 창작가들은 없는 것을 뚝딱 만들어내는 이들이 아닙니다. 이미 있던 것들을 활용하고요. 연구하며 과학자들처럼 현상을 발견하고 법칙을 알아냅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들리진 않지만 그 안에서 뭔가 모를 것들을 잡아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게 단순히 부럽게만 느껴지나요? 그럼 자연을 바라보며 무슨 느낌이 드시나요? 따스한 햇살을 눈감고 느껴보고, 불어오는 찬공기에 느껴지는 것에서 무엇을 표현할 수 있나요? 사람에게는 감수성이란 것도 있지요. 여기에 자연스레 나를 만들어주고, 이끌어주시는 분께 가 닿게 됩니다.
어제 노벨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도 소감을 발표하면서 ‘어릴 때부터 알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태어난 이유, 존재하는 이유, 그런 질문이 수 천년간 문학이 던져온 질문이며, 오늘날에도 계속되는데 지금도 지구에 사는 사람들과 각 생명체가 느끼는 1인칭 관점에서 서로를 연결해주는 언어를 통해 실타래처럼 얽히며 체온을 유지하고 있다’ 고요. 이사야도 묻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와 비교하느냐?” 나는 주님을 무어라 부를 수 있을까요? 그분을 떠올리면 언어로도 잡아낼 수 없는 차원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복음에는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나에게 오너라” 하시는데 단순히 쉬라는 뜻이 아니지요. 하느님과 합일까지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 어떤 것도 결국에는 최종 목적지에 가 닿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각자 던지는 질문과 의문 속에서 그나마 알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나의 삶도 역시 창조주께서 부여해 주셨기에 그걸 만들어주신 분과 합해지고 싶다’는 갈망에 다다르게 됩니다.
감사, 찬미가 합쳐진 기도 ‘사은 찬미가’ 가 있습니다. 떼 떼움(Te Deum) 이라고 부르지요. 4세기 경 거룩한 삼위일체를 찬미한 노래입니다. 성무일도에도 있는 이 노래를 여러분도 읊어보십시오. 그러면서 그분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