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왕 대축일

2024. 11. 23. 오후 12:5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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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왕 대축일

 지금 이곳에는 세대가 다른 많은 분들이 모여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늘 부딪히는 문제가 세대간의 갈등입니다. 사람 사는 곳 어디나 그렇지요. 어쩌면 오늘 대축일을 기념하는 문구부터 이해가 안 가실 수 있습니다. 요즘 시대에 임금, 왕이라니요? 사정이 이러하니 생각이 다릅니다. 연세 있는 분들은 이런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할 것이고요. 젊은층들은 교회가 세상과 너무 달라 보여 이질적일 것입니다. 임금이라면 내가 신하이고, 종이란 말인가?’ 라는 탄식이 나올 수 있지요. 내가 직장에서도 대우 못 받고 어렵게 사는데, 교회까지 와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해?’ 라고 생각할 수 있지요. ~ 여기서 오해를 풀고 가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여러분도 저도 억울하지 않겠지요.

 창세기를 보면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제일 마지막에 인간을 만들고서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 하십니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지요. 게다가 그들보다 이성을 가졌기에 그런 임무를 받습니다. 예수님도 구원사업을 펼치시고서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란 임무를 주십니다. 여기서 하느님과 예수님에 대해 오해하면 안되겠습니다. 당신은 임무도 주셨지만 자유의지도 주셨습니다. 그 자유는 선택도 거절할 수도 있는 자유입니다. 강요가 아닙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내 생각에 가로막히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개개인의 사람이 그렇게 선하거나, 머리가 좋거나, 능력이 뛰어난 사람만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미 역사를 통해 경험했지요. 세상의 수많은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몇몇은 덕이 있고, 백성을 사랑했지만, 대다수는 자기네 욕심을 채우는 이도 많았습니다. 그런 이들만 보고 자란 분들이라면 분명 앞서 언급한 왕, 임금은 더 이상 세상에 나와선 안될 존재일 것입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원래부터 그러진 않았습니다. 요즘 세상이 개인화가 되면서 신앙도 공동체가 아닌, 그저 나 하나 행복하면 된다 는 협소한 상태가 되어갑니다. 분명 개인의 행복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원래 혼자서 살 수 없지요. 장사를 하고싶어도 공장에서 원단을 대줘야 하고요. 소비자가 내 물건을 사줘야 하고요. 직장에 다녀도 다른 부서가 도와줘야 일이 진행됩니다. 이 미사만 해도 많은 분들의 역할 도움이 필요합니다. 여러 봉사자의 손길이 평범한 교우들을 돕습니다. 헌데 이런 사실을 모르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 아십니까? 예를 들지요. 예전 있던 본당 교사회가 안건을 냅니다. 이번 캠프 때 학생들을 데리고 예능프로그램 12일처럼 팀을 짜서 여러 지방을 다녀보잡니다. 당장 그럴 듯 보였지만 전 반대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중고등학생은 70명이고요. 교사회는 5명입니다. 교사 한명 이 10명 이상을 커버하며 책임져야 합니다. 하지만 12일 프로그램 출연자는 5명 남짓이지만 이를 담당하는 스텝은 몇 명인지 아십니까? 50명이 넘습니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세상은 TV 모니터 안과 다르지요. 모르면 오판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교회는 어떤 곳일까요?

교회를 대조사회라고 일컫습니다. 사람들이 모여있긴 하지만 우리가 알던 사회는 아닙니다. 여긴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을 따릅니다. 명예나 자리보다 더 중요한 것을 지킵니다. 세상에선 그걸 따라야 행복하다고 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긴 그런 곳이 아닙니다. 사람은 그저 먼지처럼 왔다가는 존재입니다. 이제 무엇이 중요할까요? 하느님과 예수님의 가르침, 그리고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주교와 사제를 통해 교회는 2천년간 이어져 왔습니다. 게다가 그 가르침은 사회와 아주 이질적이지 않습니다. 지킬 때 평화가 찾아오고 윤리적입니다. 어떤 분은 내가 왜 교회를 이해해야 하느냐? 교회가 나에게 맞춰다오라고 부르짖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질문을 던져봅니다. 내가 주장하는 것이 진실로 모든 이를 돕기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사랑을 빙자한 욕심입니까? 이런 말이 있지요. 법은 무심하지만, 이를 다루는 법관은 무심하지 않다. 무심하다는 말은 욕심이 없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법을 해석하고 다룰 때, 결국 법관도 인간이기에 주관적일 수 밖에 없는 인간 인식능력에 기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올바른 판단이 안 나오는 현실을 만나게 되는 겁니다.

 사랑하는 인헌동 본당 교우 여러분

다음 주부터는 희년입니다. 이미 레위기 25장에는 희년의 기쁨을 알리며 얽힌 것을 풀어주며 해방을 알려주셨습니다. 교회는 기회의 제공을 하는 곳이요, 새로운 시작이 가능케 해줍니다. 비록 개개인은 부족하지만, 참된 지향을 갖고 다스리는 임금이라면 믿고 따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복음 마지막에 나오는 말씀으로 끝내겠습니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 목소리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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