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33주간 화요일

2024. 11. 19. 오후 12:4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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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33주간 화요일

 주위 사람들 중에서 조심스럽게 대해야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어떤 경향이냐 하면 자기를 바라볼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대단히 소심하거나 또는 대단히 자기를 과신합니다. 그러면서 하고 싶은 것에만 매달립니다. 당연히 고집이 세지요. 자신이 보는 것만 보려들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자기를 볼 줄 모르는 이들은 남의 말도 듣지 않고요. 자기가 하는 일의 결과가 어떤 파급효과로 일으키는지도 모릅니다. 이런 것 있잖습니까? 장기나 바둑을 두는데 두는 자신은 판을 잘 못보고요. 옆에서 지켜보는 이가 더 잘 보는 경우입니다. 인생이라는 판에서 내가 선택하면서 말을 옮기는데, 문제는 그게 어떻게 흐를지 본인만 모르는 경우입니다. 왜냐고요? 함몰된 거죠. 또는 원하는 것만 쫓다보니 옆에서 어떻게 치고 들어올지를 모르거나 어떤 분위기로 흘러가는 지 못 읽으면 이럴 수 있습니다.

 여기에 신앙인은 좀 다릅니다. 조심스럽습니다. 보통의 일반인은 남의 눈치를 보느라, 남들의 비위를 맞추느라 조심스럽지만 우리는 나의 행동과 생각이 하느님 보시기에 합당할까?를 살핍니다. 그러면서 더 나은 것을 추구하길 원합니다. 그것은 본인의 원하는 것도 있겠지만 내가 미처 살피지 못한 것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도 바라는, 용기 있는 감행도 여기엔 포함됩니다. 이걸 단순히 성령의 이끄심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여기엔 현재 나의 것보다 더 나은 것을 원한다 는 분명한 바람은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얻기 위해 그동안의 나에서 탈피하는 것도 감수하려 듭니다. 분명 안해봤던 것은 리스크가 포함됩니다. 사실 예상되고 또는 예상을 넘어서는 리스크를 통해 진정한 것을 얻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먼저 알아차리면 좋겠지만 누가 지적을 하기도 합니다

 독서에 나는 네가 한 일을 안다. 너는 살아있다고 하지만 죽은 것이다. 나는 부자로서 풍족하고 모자람이 없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비참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것을 깨닫지 못한다 이 말씀 안에는 자기를 살펴야함을 알려줍니다. 복음의 자캐오는 세리로서 부자였지만 자기 안에 뭔가 모를 부족함을 봤기에 주님을 만나려 애를 썼습니다. 여러분은 뭐가 고프십니까? 갈망이 나를 살리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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