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33주간 수요일
중국 한나라 때 다른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는 만시(挽詩)라는 게 있었습니다. 그러다 송나라 때 시인 도연명이 ‘자기의 죽음을 애도’ 하는 자만시가 생겼고요. 조선시대에 들어와 조선 전기 천재라 일컬어지는 금오신화를 지은 매월당 김시습이 ‘나 태어나’ 라는 시를 짓습니다. 길지만 조금만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나 태어나 사람이 된 바에야 어찌 사람 도리 다 하지 못했던고? 어릴 때는 명리를 일삼고, 나이들어선 갈팡질팡 했지, 고요히 생각하노라니 너무나 부끄러운 것은 일찍 깨닫지 못했다는 사실이네... 나 죽은 뒤 무덤에 표시할 적에 꿈을 꾸다 죽어간 늙은이라 써야 하리’ 라는 내용입니다. 병들거나 죽음을 앞두고 쓴 시가 절명시라면 자만시는 아직 시간적인 여유가 있을 때 써보는 시인데요. 이런 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우리의 삶이 늘 죽음을 앞두고 있는데 실은 전혀 염두하지 않고 살아가는 현실을 가끔은 자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미나의 비유 이야기는 마치 달란트의 비유를 연상케 합니다. 헌데 대단히 불공평합니다.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게 없는 자는 그것마저 빼앗길 것”이라니요. 여기서 자기를 들여다 봐야겠습니다. 우린 결국 유한한 삶을 살고 있을 뿐입니다. 누구는 100살 가까이 큰 병 없이 살다가 천수를 누리지만 누구는 10대도 못 넘기고 가기도 합니다. 물리적으로 허락된 시간은 달랐지만 결국 주어진 삶에서 뭔가를 해야 합니다. 그나마 주님을 통해 얻은 재주를 어떻게 쓰고 있느냐? 인데요. 주인님은 냉혹한 사람 같았지만 결국 주어진 시간과 공간을 활용해야 하는 가장 공평한 사안을 제시해주신 거였습니다.
앞서 김시습이 후회로 점철된 시를 썼다면 우린 무엇을 주님께 말씀드릴 수 있을까요? 내게 아직 남은 것을 잘 활용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