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31주일미사

2024. 11. 2. 오후 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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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31주일미사. 신명기 6,2-6;히브리 7,23-28;마르코 12,28-34

 저는 예전 우리 조상들이 써 놓은 고서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러다가 조상들이 어떻게 공부했는가가 궁금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두 가지 짧은 단어가 눈에 뜨이게 되었습니다. 하나는 여박총피법'(如剝蔥皮法)’ 입니다. '공부를 하려면 파 껍질 벗겨내듯 해라.' 는 말입니다. 우리가 대파를 얻는 이유는 사실 뽀얀 속살의 향취때문입니다. 음식의 누린내와 비린내를 잡아주고요. 피로회복에도 좋습니다. 껍질은 그저 군더더기일 뿐이지요. 하지만 눈에 보이는 퍼런 껍질에만 매료된다면 실제 파를 얻는 이유를 모르는 사람과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공부를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의 차이는 쓸모있는 것과 쓸모없는 것에 대한 구분을 잘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는데요.

 오늘 1독서와 복음, 두 부분에 걸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답니다. 그것도 마음과 목숨과 정신과 힘을 다해서요. 그런데 솔직히 하느님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특히 성경을 읽으면서 하느님 뜻이 이게 뭔지, 예수님이 바라시는 게 뭔지 모르겠다는 분들 많습니다. 여기에 설명을 해주면 아는 것 같지만 다른 복음을 읽으면 또 모르겠다는 분들 많습니다. 뭐가 문제일까요? 단순히 성경공부를 해봤느냐? 안했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혹시 레시피와 본질 이해의 차이를 아십니까? 요리 때 쓰는 그 레시피 맞습니다. 만약 밥을 짓는다고 해보지요. 냄비밥은 이렇게 설명할 겁니다. 쌀과 물을 비율에 맞춰 밥통에 넣고, 끓이는데 다 됐다고 바로 뚜껑을 열면 안되고 물이 줄면 중불과 약불로 줄여가며 뜸을 들이고 나서 떡지지 않게 주걱으로 저어주라고 할 겁니다. 하지만 이해는 좀 다릅니다. 쌀의 생물학, 곡물의 성질, 열을 가하면서 달라지는 물리학, 열역학 등 이해가 필요한 부분이 많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단순히 레시피만 살핍니다. 당장 밥을 먹고 싶으니까요. 그러면 다 된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곧 한계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 방법으로 밥을 만들 순 있어도 떡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진 않으니까요. 하지만 요리의 본질을 알면 쌀로 만드는 밥, , , 식혜 등 여러 음식을 만들 수 있습니다. 즉 뭔가 제대로 알고 싶다면 본질을 알아야지 레시피에만 매달리면 안됩니다. 레시피의 문제점은 그냥 따라하면 되는 쉬운 것이지만 응용과 적용이 안된다는 문제가 생깁니다. 그것만 원하면 레시피에만 매달리십시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막히는 때가 올 겁니다. 이 차이는 크지요. 누구는 당장의 방법만 알려고 들지만 문제는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는 점인데요. 그럼 신앙의 실마리는 무엇일까요? 바로 오늘 말씀인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그 첫째일 것입니다. 그럴 때 어떤 어려움도 이겨나갈 바탕이 되니까요. 여박총피법에 이은 둘째는 바로 '당구첩경'(當求捷經)입니다. 이 말은 '마땅히 지름길을 구하라.' 는 것입니다. 빨리 갈 수 있는 지름길이 있는데 굳이 먼 길을 돌아서 헤맬 필요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구원의 첩경은 바로 하느님 사랑, 이웃사랑입니다. 그런데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저 눈앞에 것만 연연하며 그것을 구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서양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빵만을 구하려고 하면 빵도 얻지 못하지만, 빵 이상의 것을 추구하면 빵은 저절로 얻어진다.' 주자도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사람이 이익을 추구하면 이익도 얻지 못할 뿐 아니라 장차 그 몸을 해치고, 의리를 추구하면 이익은 따로 구하지 않아도 절로 이롭지 않음이 없다.' 고요.

 사랑하는 인헌동 본당 교우 여러분.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이 당장 무엇을 가져다주지 않는다고 여길 것입니다. 이런 계명으로 사는 게 불편하다고 여길 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마음으로 사람을 대할 때, 이해되지 않은 사람의 마음이 보입니다. 병이 들었는지, 외로운 지, 무엇을 그렇게 세우고 싶었기에 그런 고집을 피우는 지 말이지요. 당장 그 사람의 말에 찬동하지는 못할 지라도, 사랑을 해주지는 못할 지라도, 잠시 여겨봐주고 기다리는 자세가 생깁니다. 삶의 우선순위를 먼저 매겨보십시오. 공부란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만드는 과정입니다. 마찬가지로 신앙도 얽혀있던 내 삶을 단순하게 만들면서 평안하게 만들어줍니다. 그러기 위해선 하느님을 먼저 우위에 두고, 그분의 시각에서 여러 가지를 봐야 하겠지요. 여러분도 그렇게 사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참된 본질이 보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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