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2024. 10. 19. 오전 12: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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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여러분은 정보를 어떻게 얻으십니까? 시각적인 세상이니 보이는 것에 치중합니다만 처음부터 보는 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이를테면 엄마, 아빠라는 말을 글자로 배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엄마, 아빠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시작합니다. 보는 눈이 정확하게 여겨질 수 있지만, 착시라는 말도 있듯이 사람은 잘못 볼 수 있고요. 색상도 그 색깔로 보지 못하는 이도 있습니다. 생각보다 눈은 그렇게 정확한 정보를 주진 못하는데요. 하지만 귀는 좀 다릅니다. 사람이 죽을 때도 눈을 감았을지언정 듣는 귀는 제일 오랫동안 열려있기에 가족들은 돌아가시는 분의 귀 가까이 대고 드리고 싶은 마지막 안부를 전하곤 하는데요. 듣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자폐증, 난독증, 학습 지체, 실어증, 언어 장애 등이 실은 듣기 장애에서 온다면 믿기십니까? 난독증의 경우, 뇌 양쪽이 반구가 불균형을 이루거나 귀가 오염되어 평형고리관 체계에 이상이 생기거나 난청이 생기면 그럴 수 있습니다. 귀는 단순히 외부의 소리만 듣는 것이 아니죠. 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근육 운동을 관장합니다. 그래서 귀에 문제가 생기면 몸을 반듯하게 가누기 힘듭니다. 게다가 아이가 산만하다면 쉽게 넘기지 말고 귀의 감염을 의심할 수 있습니다. 외국어 공부에 관한 실용적인 지식을 들자면 각국 언어들은 고유한 주파수 패턴을 가집니다. 그래서 외국어를 배울 때 해당 언어의 주파수에 맞춰 듣기 훈련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게다가 젊을 때 몸을 흔들게 만드는 음악을 즐겨듣는 이유도 성장기에 몸이 빠르게 성장하기에 몸이 변하니까 끊임없는 자기 조정을 필요로 하기에 강한 외적 자극을 주는 록 음악을 좋아하게 된답니다.

북멕시코 인디언 킥카푸족은 사춘기에 들어서는 아이들에게 가르친답니다. 뭔가를 알려면 듣는 것부터 시작하라. 북소리, 공기, 대지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밤하늘을 여행하는 별들에게 귀를 기울여라.” 듣는 것이 영적 세계로 입문하는 첫 단추라고 말합니다. 인디언들은 겉으로 드러난 현상이 아닌, 오직 침묵과 듣기를 통해 영적 탐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봅니다. 눈이 아니라 자연의 소리와 내 안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사춘기에 접어든 인디언 소년들은 신명 탐구라 해서 들판이나 산에 혼자 가서 여러 날 동안 단식하며 영적 탐구를 하는 의식이 있습니다. 이때 침묵 속에서 신과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듣기를 시킵니다. 저는 누구입니까? 제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제 가족와 이웃을 위해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라고요. 인디언 아이들은 그렇게 자기에게 주어진 선물이 무엇인지를 자연의 소리를 들으면서 자기 앞길을 어찌 가야 할지 깨달을 때 비로소 어른이 됩니다. 인디언들은 이처럼 듣기의 힘을 제대로 인식하고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 자신에게도 물어보게 됩니다. 나도 과연 잘 듣고 있는가? 하고요.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말씀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나는 묻습니다. 그들이 들은 적이 없다는 말씀입니까? 물론 들었습니다.” 내 마음에서 울려진 목소리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 목소리는 그저 듣는 귀 문제뿐이 아니지요. 내 마음을 반듯하고 가지런히 놓은 상태에서 들려오는 내면의 목소리를 말합니다. 그럴 때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됩니다. 어릴 때는 본받고 따라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곤 합니다. 하지만 성장하면 그 바탕으로 이뤄진 나의 본모습을 따를 때, 편안하고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내가 제대로 들을 때 나는 비로소 입을 벌려 말을 틔울 수 있었습니다. 불러주는 음성에서 내가 누구인지 압니다. 이름이 무엇이고, 어떤 사람인지를요. 여러분은 주님이 불러주시는 부르심에서 무엇을 찾으셨는지요? 여전히 모르시겠다면 남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아도 정작 나는 누군지 모르는 상태가 되는데요. 마르틴 부버의 유명한 책인 나와 너가 있습니다. 인간이란 존재는 나 외에 어떤 대상과의 관계에서 가능해진다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비인격적 관계가 되면 나와 그것이 됩니다. 인격적 관계가 될 때는 내 존재가 인간적으로 살아납니다만 나와 그것이 되는 순간, 대상을 수단으로 여기며 들을 필요도 없고, 듣지도 않는 관계가 되어 결국 나의 인간성도 무너진다는 이론인데요 

 사랑하는 인헌동 본당 교우 여러분

주님이 주신 목소리는 그저 나 하나만 중시하라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같이 함께하며 잘살자는 목소리였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전달하며 사시는지요?

댓글 1

  • 2024년 10월 20일 오후 8:14

    안부 여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