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7주간 목요일
얼마 전, 견진성사를 주교님과 집전하면서 뜻모를 성령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느꼈는데요. 솔직히 우리가 한 건 별로 없었습니다. 주어진 교리 성실하게 출석한 것이 그나마 우리가 한 최선의 것이었습니다. 물론 개별적으로 잘 받기 위해 기도와 정성을 들인 분도 있었을 것입니다. 여기에 큰 자격 조건을 따지지 않고 성령으 은총을 우리에게 부어주셨다는데 큰 의미가 있는데요.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줄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그분은 어떻게든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준비하고 계신 듯 합니다. 마치 친정 엄마가 ‘뭐 더 필요한 것이 없니?’ 라며 음식을 막 싸주듯이 말입니다. 이런 사랑을 어떻게 바라보십니까?
독서에 “여러분은 그렇게도 어리석습니까? 성령으로 시작하고서는 육으로 마칠 셈입니까?” 어떤 곳이든 사람이 모이고 단체가 커지면 인간적인 사고방식으로 해결지으려 합니다. 일단 그 방법이 빠르고, 당장 효과가 보이니까요. 하지만 성령의 방식은 각자 다른 모두에게 골고루 모든 것을 주는 방식입니다. 우리 몸으로 비유하자면 고린토1서 12장에 나오지요. “지체는 많지만 몸은 하나입니다. 눈이 손에게 나는 네가 필요없다. 할 수 없고, 머리가 두 발에게 나는 너희가 필요없다. 할 수 없습니다. 모두 사도일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기적을 일으킬 수야 없지 않습니까?...” 의 말씀이 쭈욱 이어집니다. 당장 나에게 필요가 없겠지만 그래도 모두를 위해 주신 것이라면 그 중 내게만 주신 은총을 더 찾아본다면 나와 모두의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