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5주간 목요일
모든 것을 자기 수준 하에서 알려고 들고, 단순하게만 접근하고 처리하는 사람들은 절대 모르는 분야가 있습니다.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것만 취급하고 나머지는 쓸모없다고 여기는 이들은 절대 알 수 없는 분야가 있습니다. 그 분야는 지금 우리가 접하고 있는 ‘종교’ 분야입니다. 여기는 하느님에 대해 알려고 드는 이에게 지식과 정보를 전달해주긴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라 할 수 없다는 것을 전제하면서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삶’에 대해서 묻고자 하면 오히려 ‘죽음’을 이야기 하는 편이 빠른 방법인 것처럼 내가 듣고자 하는 것을 오히려 반대편 쪽에서 설명 듣는 편이 나을 수도 있음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헤로데는 당황합니다. 세례자 요한을 죽였으니 앞으로 걱정할 것이 없다고 걸림돌이 없어졌다고 좋아했는데 들려오는 소문에 불안해 하고 있습니다. ‘내가 미워하고 싫어하는 사람이 없어지면 내가 행복해질까요?’ 실은 그렇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독서에도 “이걸 보아라, 새로운 것이다.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 있더라도 그것은 우리 이전, 옛 시대에 이미 있던 것이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에서 네오가 시스템을 만든 아키텍쳐에게 찾아가니 그는 네오에게 이런 말을 해준다 ‘이런 일을 한 사람이 네가 처음일 것 같지? 네가 6번째야’ 불의에 항거하는 정의로운 사람을 죽여도 다른 이가 또 일어날 것이며, 부정한 이를 없앤다 해도 악의 자녀들이 다시 계속 나올 것입니다. 온갖 범죄를 저지르며 말이지요. 마치 혼란한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할까요? 안타깝게도 말로는 불가합니다. 독서에도 “온갖 말로 애써 말하지만 아무도 다 말하지 못한다.”처럼 계속 뭔가 들고 일어날 것이고요. 또한 사라질 것입니다. 그 사라짐이 그렇다고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흐름속에서 흘러갈 뿐입니다. 내가 살아있으면서 모든 것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만은 확실할 뿐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