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3주간 화요일
목동 성당 때 있을 때 일입니다. 목동이란 곳은 86,88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세워진 계획도시입니다, 그래서 도로도 일방통행으로 되어 있고요. 종교부지도 각 종파가 옹기종기 모여진 다른 동네에선 쉽게 찾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집니다. 여기에 성당 근처 개신교에서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목사와 장로파가 갈라졌고요. 인근 옆 건물에서 예배를 드리며 소송을 변호사를 통해 소송을 벌이고 플랜카드를 걸고, 주일마다 소란스러웠습니다. 그게 싫었던 이들은 자연스레 천주교로 오곤 했습니다. 바로 옆집에서 벌어지는 사태를 보면서 오늘 독서가 떠오릅니다.
“여러분 가운데 누가 다른 사람과 문제가 있을 때 어찌 성도들에게 가지않고 이교도들에게 가서 심판을 받으려고 한다는 말입니까?” 개신교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기에 그럴 수 있지만 우린 좀 다릅니다. 참사회, 징계위원회가 열립니다. 그러면서 그 결과에 순명합니다. 이미 일반 재판소도 ‘종교 단체의 조직과 운영은 그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 며 ‘법원 심판대상으로 삼는 것은 적절치 않다’ 라고 하고 있지만, 소송을 걸면 자연스레 수입이 생기니 오히려 그걸 내심 반기곤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될수록 위험요소가 생기지요. 우리의 치부가 드러나니 말입니다. 우리가 가진 좋은 점을 다른 데 맡기면서 우리의 부끄러움은 밖으로 드러납니다. 그러면 당연히 안 좋은 소문이 더 날 수 밖에 없는데요. 살면서 잘못하고 실수할 수 있습니다. 한편 스스로 인정하고 적절한 처벌과 징계속에서 새 출발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는 것도 우리가 가진 좋은 모습이라 하겠는데요.
이미 우리가 가진 좋은 것을 통해 해결 지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