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2주일
우리가 살고있는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입니다. 평상시엔 법에 별 관심이 없는 우리지만 가끔 억울한 문제나, 상대방과 소송이 걸리는 문제가 생기면 그때부터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이른바 ‘법 없이도 살 것’ 같던 내가, 법에 관심도 없던 내가, 무지한 관계로 여러 일에 얽히면 모든 것이 원망스럽습니다. 오늘 말씀들을 들으며 법, 규칙, 규정들이 나랑 무슨 관계냐? 하실 수 있지만 실상 관심을 가져야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데요.
용어들이 생소하고 어려울 수 있지만 잘 들으시면 법의 정신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큰 범주에서 법은 자연법과 실정법이 있습니다. 둘 사이 관계를 알아야 하느님 보시기에도 좋고, 일상생활도 탈 없이 지낼 수 있는데요. 먼저 자연법입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말하는 자연법이란 ‘지성적 창조물 안에 있는 영원법에 참여이다’ 말합니다. 지성적 창조물은 사람을 말하죠. 그런 사람이 영원법에 참여한다. 그럼 영원법은 뭔가요? 영원법은 만물을 통치하시는 하느님의 계획입니다. ‘하느님 계획이 뭔지 모르겠는데요?’ 라고 말씀한다면, 자연법을 따라가면 영원법에 참여하게 됩니다. 하느님이 만든 피조물은 자기 본연의 목적을 이루면서 자연스레 하느님 계획에 동참하게 됩니다. 마치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동식물은 수정하여 새끼를 낳고 기르는 것이 하느님 계획을 따른다는 말과 같습니다. 이렇듯 자연법은 보편적이며 시간이 지나도 절대적입니다. 우린 다 압니다. 사람끼리 살인하지 말아야 하고, 도둑질, 거짓말을 하면 안된다는 것은 시대를 초월하는 지시이지요. 하지만 사람은 좀 다릅니다. 단순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자기 자유를 누리고픈 욕구와 본능이 있습니다. 여기에 인간들을 제어할 실제적인 법의 필요성을 갖게 됩니다. 현실적으로 인간 사회 안에서 범죄가 벌어지니까요. 하늘이 만든 자연법을 알면서도 가장 기본적인 양심을 거스르는 일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사람이 만든 실정법의 목적이 나옵니다.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공동체의 선익'을 위해 생겼습니다. 선함에 참여할 때 하느님의 생각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현실적으로 이뤄지기 위해 공동체는 입법권자에 의한 통치가 필요하게 됩니다. 그래서 공공의 선익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요구합니다. 예를 들어 조국을 위해 군대 징집을 요구하거나, 개인에게 세금을 내게끔 요구합니다. 공공의 선익을 위해서 그렇게 합니다. 여기에 통치자는 국민들이 그 법을 이행하게끔 계속 더 나은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사람은 시킨다고 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앞서 법을 이야기 할 때 개인적으로 의아해 하실 수 있습니다. ‘아니 법은 국회에서 통과하면 정당한 법 아냐? 자연법.. 그런 걸 왜 알아야 해?’ 이걸 법실증주의라고 말합니다. 입법권자에 의해 제정되지 않는 법률은 법이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국가도 오판을 합니다. 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의 나치나 일본의 군국주의. 옛 소련의 공산당이 그랬습니다. 많은 이가 광기로 인해 그 법을 따르면서 집단이 조절되지 않는 지경이었고요. 인민의 적이라며 부모까지 고발하면서 죄의식 없이 많은 사람을 살해했습니다. 게다가 요새는 불의한 법도 만들어집니다. 공공의 선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어느 특정한 부류만을 위한 법, 특권을 누리는 이들만의 법입니다. 여기서 실정법의 한계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럼 실정법은 필요없나요? 아니지요. 자연법과 실정법은 서로를 보완해줍니다.
이제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실정법 없이 인간은 완덕에 다다르기 어렵습니다. 원래 인간은 가진 본능을 스스로 제어하기 어렵기에 형벌과 처벌의 두려움을 가지고 인간이 악으로 기우는 경향을 막고자 합니다. 마치 요새 벌어지는 딥페이크 사태처럼 악은 악을 불러일으키고요. 의식없이 모방하면서 퍼져나갑니다. 이게 악의 성질입니다. 단순 개인의 악행 같지만 악은 사회성을 지닙니다. 개인과 공동체의 해를 끼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자연법이 말하는 ‘선을 추구하고 악을 행하지 말라’는 기본원칙을 따라갈 때, 현실적으로 실정법은 사회 평화와 평등한 사회의 실현을 위해 기여할 것입니다. 물론 실정법은 규제를 통해 인간을 덕으로 인도하는 것이지, 강제성을 띠기 때문에 모두가 좋아라 하진 않습니다. 그러나 외적인 개입을 통해 교육하면서 계도(啓導)하는 것이 법의 원래 정신입니다.
사랑하는 인헌동 본당 교우 여러분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 는 말씀처럼 내 안에 어떤 것이 있는 지 살펴야겠습니다. 나의 본능을 점점 하느님의 것으로 바꿔나갈 때, 그런 시도가 점차 나를 살려 나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