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9주간 금요일
나태주 시인의 ‘부부’ 라는 시가 있습니다.
부부간 금슬이 좋지 않았다
오래 앙숙이었다.
그런데 정작 부인이 세상을 뜨자
그는 쉽게 일어서지를 못했다.
겨울 몸을 추스렸을 때 그는
사람들의 세상 속으로 가지 않고
채소밭으로 나가
채소들을 들여다보며 살았다
생전 부인이 기르던 채소들을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왜 모를 일이겠습니까? 알면서도 시인이 능청을 떠는 것이죠. 채소는 부인을 뜻하지요. 앙숙처럼 여겼지만 떠나니 그리운 거랍니다. 우리가 그렇습니다. 있을 때는 잘 모르다가 떠나면 허전함이 가득히 밀려옵니다.
오늘 말씀은 사랑입니다. 누구도 봐주지 않던 아이를 씻기고 꽃단장까지 시키며 키워냅니다. 물론 자기의 아름다움을 믿고 오만을 떨기도 했습니다. 복음에도 “무엇이든지 이유만 있으면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바리사이의 질문은 사랑도 할 줄 모르는 자신의 무지함을 드러냅니다. 여기서 우린 무엇을 봐야 할까요? 평소 내가 지닌 사랑이 어떤 지, 같이 지내는 이들을 어떻게 여겨봐야 할지 볼 필요가 있습니다. 평소 받아온 사랑을 어떻게 관리합니까? 고마움은 어찌 표현합니까? 다들 자기 말 잘 들어주는 사람을 원하지요.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관심 없습니다. 상대방만의 고유한 모습은 보지 않고 그저 자기 방식대로만 보려 듭니다.
인생은 여러 가지입니다. 홀로 살아야만 하는 사람, 같이 살아야 하는 사람, 같이 살지만 힘든 사람 등등입니다. 자신의 태생과 본성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서로를 인간 개조 하려들지만 오히려 힘든 쪽은 내 쪽이지요. 부부끼리 힘든 이유도 싸움의 내용보다 ‘감정의 골’ 에 갇혀있기 때문인데요. 어떤 사람인지 더 바라볼 때 애틋함이 나올텐데 그저 쉬운 선택만 하려 듭니다. 우린 지인(知人)들의 결점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럴 때 끔찍한 상황이 다가와도 분별력을 잃지 않게 됩니다. 허나 많은 경우가 자기 방식대로 하려드니 문제가 생기는데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품어줘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