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주교 학자 기념일

2024. 8. 1. 오후 12:5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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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주교 학자 기념일

 우린 구분하길 잘합니다. , , 내 편, 남의 편, 우리나라, 다른 나라 등 말이죠. 헌데 그러면서 이야기 듣는 것은 좋아합니다. 게다가 상당히 개인적인 삶을 살아온 자서전, 체험, 수필을 읽으며 공감을 느낍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 이야기인데 왜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고 옳다고 맞장구를 칠까요? 여기엔 누구나 비슷한 것을 경험해봤기 때문이고요. 납득이 가기 때문입니다.

 오늘 나오는 말씀 속 상황들은 이질적인 내용이 아닙니다. 대단히 평범한 일상에서 살필 수 있는 내용입니다. 옹기장이가 흠집이 생기면 눈에 들 때까지 진흙을 덧바르고 고칩니다. 바다에서 건진 그물 생선 가운데서 어부의 판단으로 골라내고 있습니다. 내가 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해?’ 라고 옹기나 생선 입장에서는 따지고 싶겠지만 한편 본인이 어떤 상태인지는 자신이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에게 달려있고요. 상대방에게 달려있습니다. 마치 역사적 평가가 시대마다 달리 해석되었듯이 말입니다. 하지만 만고의 주인, 진리이신 당신 앞에 나는 어떤 결과를 얻게 될까요? 거짓이 난무하고 어지러움 속에서 결국 참됨과 진리가 승리한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습니다. 다만 현실상황이 어지러우면 당장 잘 보이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긴 합니다.

 한때 변호사로 일한 귀족 문의 알폰소 주교가 무엇 때문에 사제의 길을 가게 되었을까요? 그의 일상에서 변호사는 악마도 변호해야 한다는 걸 봤기 때문입니다. 옳지 않은 것도 옳다고 우기면서까지 승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거기서 어디에 진정 손을 들어줘야 할지 보았을 것입니다. 그가 친구에게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냅니다. 나의 친구여 우리의 직업은 불화와 위험으로 가득하네. 그 때문에 우린 불행한 삶을 살고있고 죽음마저 불행한 위험을 안고 있어. 나는 나 자신을 위해 그만둘꺼야 결국 진정한 심판자이신 분께 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양심적인 결단을 내립니다. 개인적인 회개와 회심이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것은 거짓된 삶에서 참됨을 꿈꾸기 때문일 것입니다. 과연 여기에 동의하십니까? 일상에서 깨달음을 얻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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