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 아가 3,1-4. 요한 20,1-18
연애하는 두 연인이 있습니다. 여기에 한 남자가 묻습니다. ‘너는 내가 어디가 좋아?’ 여자가 답합니다. ‘나도 몰라. 근데 좋아’ 여자보다 분석적이라는 남자의 답변도 그다지 다르지 않습니다. ‘난 니가 이뻐서 좋아’ 하지만 이쁘다는 것도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기에 정확한 이유라고 말할 수는 없지요.
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요? 그동안 신앙, 교리..하면 머리로 받아들인 측면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시고, 그런 행동에는 다분히 이런 이유가 있었고 등 말이지요. 설명이 필요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설명이 없으면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게 숨어있었습니다. 그건 ‘끌림’입니다. 매력을 발견했고, 같이 함께 하고 싶은 끌림, 자석같이 딱 붙어 이 더운 습기 가득한 때에 땀띠가 나도 상관없을 만큼 좋은 감정 말입니다. 막달레나는 예수님에게서 그런 것을 만났습니다.
누구는 이런 것을 이성(理性)적이지 않은 남녀의 이성(異性)적 감정이라고 눈살을 찌뿌릴 수도 있습니다. 신성한 신앙을 훼손하는 거라 보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독서의 아가서를 보십시오. 대단히 달디 단 연애편지를 보는 듯한 느낌입니다. 하느님을 마치 연인처럼 바라보고 찾고있습니다. 막달레나의 행동도 단순히 주님을 공경하는 차원으로만 보이지 않습니다. 여기서 사랑의 속성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동안 사랑을 심오하게만, 성스럽게만 여겼다면 끌림의 감정을 통해 ‘주님을 사랑한다’ 는 것이 그리 딱딱하거나 분석적인 것이 아닌, 참답게 함께 살고 싶어하는 모습이 그려진다는 것을 발견할텐데요. 서품, 서원하는 성직자, 수도자가 진정 주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대단히 건조한 상태에 머물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어떻게 사랑하십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