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야고보 사도 축일

2024. 7. 25. 오후 2: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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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야고보 사도 축일

 예부터 아는 게 힘이다, 배워야 산다며 학구열 높은 민족이었습니다. 집이 가난해도 학교는 어떻게든 보낼 만큼 열성을 보였습니다. 그로 인해 인생이 바뀌고, 팔자가 바뀌고, 형편이 달라졌습니다. 결국 무엇을 위한 배움이었을까요? 안타깝게도 순수학문을 탐구하는 것이 아닌, 경제적, 명예적인 가치 확보를 위한 등급이 높아지기 위한 공부였습니다1980년대 신자유주의 바람이 불면서 교육계 흐름도 달라졌습니다. 지식의 산업화, 자본화, 대학이 기업화가 됩니다. 초기에는 순수학문을 연구하기 위해 애쓰고 노력하다가 그러려면 연구비가 필요하고, 대학도 경쟁력이 필요하다고 여겨서 기업, 국가의 투자를 받아 운영하며, 이제 학교와 학생도 이른바 돈이 되는 연구분야, 취업이 되는 분야, 당장 소득이 되는 곳을 찾습니다. 당연히 학생도 그 분위기에 젖어 시민과 지역사회를 위한 연구에는 소홀히 여깁니다.

 자~ 여기에 예수님은 기존 율법학자를 제자로 부르시지 않고, 오히려 평범한 사람들을 부르십니다. 복음처럼 제배대오의 아들의 어머니와 아들인 야고보와 요한도 팔자 고칠 것 같아서 예수님께 자리를 운운합니다. 어찌보면 대단히 현실적인 차원에서 만족을 보려 합니다. 여기에 예수님은 섬기는 사람, 종이 되어야 한다 고 하십니다. 게다가 독서에도 우리는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질그릇은 흙으로 빚은 토기입니다. 평범한 사람이나 쓰던 그릇입니다. 헌데 보물을 왜 여기에 담으려 할까요? 질그릇은 잘 깨지는 단점이 있지만 액체를 담았을 때는 물을 깨끗이 정화시키고요. 살균력을 갖고 있습니다. 항아리처럼 말이죠. 상처받기 쉽지만 하느님의 힘은 평범한 속에서 비범함을 보이십니다

 우리의 배움, 우리의 사명은 욕심이 없는, 뭔가 노리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형태로 변화시키는 배움이어야 합니다. 자리를 탐했던 야고보가 결국 순교하여 주님의 이름을 드러내었잖습니까? 내가 배운 것을 토대로 나는 무엇을 드러내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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