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부모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일
여러분의 부부생활은 문제없이 잘되어 가십니까? 서로에 대해 다 아는 듯 여기지만 여전히 모를 때가 있고요. 그러면서 쉽게 속단하지 않고 공경하는 자세가 필요할 때입니다. 요사이 부부들은 먼저 동거를 하는 등, 거사(?)(巨事)를 이미 치룬 이들이 많습니다. 예전 한창 혼인교리 강사를 하던 10년 전 즈음, 때 마침 교구에서 예비부부들에게 설문조사를 했었습니다. 경제적인 면부터 여러 분야를 묻다가 ‘성관계도 하였는가?’ 에 대한 질문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대상자가 성사혼도 있고요. 한쪽만 신자인 관면혼도 있었는데 이미 89%이상이 ‘관계를 맺었다’고 답변에 기재되었습니다. 물론 다 알아보고 한다는 차원으로 이들은 대답했겠지만 너무 많이 알면, 서로에 대해 실망감이나 서로를 함부로 대하는 예들을 보곤 하는데요.
요아킴과 안나 기념일을 맞이하여 ‘이들은 자녀가 없던 때에 어떻게 서로를 대했을까?’ 에 대해 상상을 해보곤 합니다. 요즘이야 불임의 원인을 알아볼 수 있는 세상이지만 그 당시는 그런 도구가 없던 시절이었지요. 결국 서로를 배려해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임신은 서로가 신경을 써주고, 맞춰줘야 하는 문제니까요. 이제 70줄이 되신 자녀가 없던 예전 교우 가족이 생각납니다. 아이는 없고, 시부모의 눈치는 계속되던 때에 형제님이 부모에게 이렇게 말했답니다. ‘이건 제가 문제가 있는 것이니까 더 이상 말씀하지 말라’ 고요. 부인을 생각해 주는 차원에서 강하게 말씀하던 것을 떠올려보면 속마음은 얼마나 쓰렸을까? 싶습니다. 혼자서 할 수 없고, 서로가 협조해야만 가능한 현실에서 교회의 가장 작은 단위는 부부요, 가정이란 사실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뭐든지 그렇듯이 뻔하게만 여기면 서로를 홀대하게 되지요. 고통과 아픔을 함께 겪으며, 서로를 위해주면서 단단해집니다. 그런 체험이 있었기에 요아킴과 안나는 다져지는 삶 속에서 기도를 통해 만난 성모님에게 선한 영향력으로 잘 키워냈을 것입니다. 부부끼리 서로를 소중히 여기는 자세는 오늘날 함께 있어도 외롭고 힘든 세상에서 많은 가르침을 줄텐데요. 서로를 믿는 사랑을 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