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4주간 화요일

2024. 7. 9. 오후 11: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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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14주간 화요일

 오늘날처럼 종교의 숫자, 교회의 숫자가 많은 적이 없었습니다. 사이비건, 신흥종교이건 간에 말이지요. 이제는 종교를 가진다고 억압받는 세상도 아니지요. 그럼에도 사람들 마음 속에 궁핍함과 빈곤함이 엿보이는데요. 무엇이 문제일까요? 무엇이 우리를 가리울까요? 구약시대 사람들은 하느님을 만났지만 하느님에게 등을 돌립니다. 신약시대 사람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의 흔적을 만났지만 오히려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렸다 고 말합니다. 율법학자들조차 말이지요. 무슨 이유로 그랬을까요?

요사이 무신론은 신을 거부하는 신 존재의 부정을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특정 신 관념을 거부합니다. 우리가 말하는 신 관념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지요. 올바름이나 진리는 사실 불편한 진실을 내포합니다. 예를 들자면 희생하고, 견디고, 봉사하고... 번거롭습니다. 부담입니다. 예전에 해왔던 것을 바라지요. 사실 바라는 것을 얻으려면 거부할 줄도 알아야 하고 절제도 필요합니다. 그래야 참됨이 보이니까요.

 잠시 다른 종교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요새는 모르겠지만 불교에서 행자들 교육 시킬 때 책을 읽지 못하게 한답니다. 책을 읽기보다 사물 속에서 관찰하라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어떤 행자에게 잠시 1년간 암자에서 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라 했답니다. 그러다 1년 후 돌아와서 물소리가 어떠냐? 고 큰 스님이 물으니 물소리가 다 똑같지요. ..’ 그랬답니다. 이에 큰 스님은 물이 흐를 때 비가 올 때, 가물었을 때, 다 다른데 어찌 똑같으냐?’ 고 되묻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수필가 법정 스님도 그랬답니다. 행자 시절 책을 읽고 싶었답니다. 그래서 몰래 장에 나가서 소설책을 사서 아궁이 앞에서 읽다가 그만 큰 스님에게 걸려 바로 그 책은 아궁이로 집어던져졌답니다. 원망스럽고, 화가 났겠지만 그런 수련의 시간을 견뎠기에 우리가 다 아는 그런 분이 되었지요. 헌데 사람은 자기가 원한데로만 하려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러면서 혼자 하려고 들지요. 당연히 지칠 수 밖에 없는데요.

 우리가 모시는 분을 통해 참다운 것을 만나야 합니다. 그러려고 왔잖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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